텔레그램 ‘박사방’에서 미성년자 등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조주빈(25)이 검찰로 송치된 가운데 “n번방 범죄자들 전원을 화학적 거세하라”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8세 여아를 성폭행해 장기를 파손시킨 조두순 사건 등 잔혹한 성범죄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이들을 엄벌에 처해달라’는 무관용 여론이 들끓는다.  

 

화학적 거세란 성폭력 충동조절제를 투여해 성적 활동이나 성욕을 감퇴시키는 것으로, 고환이나 난소를 몸에서 적출해 성 불구로 만드는 물리적 거세와는 다른 개념이다. 보안처분(재범의 위험을 막기 위해 행사는 처분)이라 당사자의 동의를 따로 구하지 않는 강제적 처분이다. 검사의 청구로 법원이 치료 명령을 결정하거나 치료감호 심의위원회가 내린 결정으로 이뤄진다.  

법적 근거도 있다.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일명 화학적 거세법)'이 제정돼 있다. 당시 위헌 논란까지 일었지만, 헌재는 지난 2015년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대상은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성도착증 환자’ 가운데 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성폭행 범죄자에 한해서다.

그렇다고 모든 n번방 관련 성범죄자가 화학적 거세 대상인 것은 아니다. 아동·청소년 이용음란물을 제작·판매·배포·전시·상영·소지하는 등의 범죄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화학적 거세 명령을 받기 위해서는 단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뿐만 아니라 성도착증이라는 전문의 판단 절차도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지난 2008년 화학적 거세법을 대표 발의한 박민식 전 의원(미래통합당 부산 북강서갑 후보)은 “n번방 범죄자 전원을 화학적 거세하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며 여론 조성에 나섰다. 박 전 의원은 글에서 “n번방 주동자는 물론 돈을 주고 이를 시청한 범죄자들 모두에게 강력한 처벌은 물론, 화학적 거세를 즉각 실행할 것을 요청한다”고 적었다.  

그는 이를 위해 ▶아동 음란물 관련 범죄자도 화학적 거세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달라 ▶아동 음란물 관련 범죄자는 성도착증 감정 절차를 간소화해달라고 요구했다. 해당 청와대 국민 청원은 지난 25일 기준 400여명이 동의했다.  

화학적 거세가 성범죄 억제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분분하다. ‘치료’가 아닌 ‘형벌’ 개념이기 때문에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 없다는 점도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지적된다.

이에 대해 지난해 12월 법무부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용역을 줘 작성된 ‘성충동 약물치료의 성과 및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화학적 거세 처분을 받은 성범죄자 25명은 평균 22.3개월 동안 동종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조사됐다. 이 같은 효과는 법원이 약물치료 청구를 기각한 성범죄자 6명 중 3명이 보호관찰 기간에 재범을 일으켰다는 사실과 비교해보면 더욱 뚜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성폭행범의 왜곡된 성 의식을 그대로 둔 채 성욕만 줄인다고 성범죄가 감소하지는 않는다고 우려했다. 특히 화학적 거세 처분과 함께 주기적인 심리치료 등이 재범 예방에 복합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위원은 “지배욕‧금전욕 등 다층적 욕망이 얽힌 n번방 범죄의 특성 상 화학적 거세만을 우선적 대책으로 볼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성충동 약물 치료 전문의도 “일반적 정신과 치료나 약물 치료 등을 선행한 뒤 최종적으로 쓰는 방법이 화학적 거세”라고 주장했다.  

해외에서도 화학적 거세는 제한적으로 쓰이고 있다. 물리적 거세를 합법화한 최초의 나라인 덴마크는 물리적 거세는 폐지됐지만, 1973년부터 성범죄자에 대한 행동치료가 실패한 경우에 한해 화학적 거세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루이지애나‧몬타나‧위스콘신 등 일부 주에서 시행 중이다. 캐나다 교정국에서도 화학적 거세와 가족상담, 집단상담, 인지행동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약물치료를 받는 동안은 효과가 뛰어나지만 약물 치료를 끊는 순간 원상태로 돌아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한 현직 법관은 “성범죄에 대한 양형이 전반적으로 높아져야 한다는 요구로 읽힌다”며 “살인 등 다른 강력범죄와의 양형도 비교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문제”라고 언급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