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스포츠 행사장에서의 팀 쿡. 시총 2조 달러를 목전에 둔 지금도 하이파이브 타이밍이다. AP=연합뉴스
잡스가 떠나고 9년이 흐른 2020년. 실상은 정반대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184조원) 고지를 밟은 애플은 10일 현재(7일 기준 1조9000억 달러·약 2253조원) ‘꿈의 시총’으로 불리는 2조 달러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10일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1621조원)을 모두 합쳐도 애플 하나에 못 미친다. 한국의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1919조 399억원, 한국은행 통계)보다 많다.

애플, ‘꿈의 시총’ 2조 달러 돌파 목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 모든 것이 잡스가 후계자로 지목한 팀 쿡이 묵묵히 일군 성과다. 시장은 이제 이렇게 기억한다. 애플을 만든 건 잡스지만, 애플을 키운 건 팔 할이 팀 쿡이라고. 잡스가 놓은 반석 위에 든든한 기둥을 세운 팀 쿡 리더십의 요체를 파악하기 위해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그를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리더십 요체를 추출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부딪치지 말고, 유연하게 스며라
팀 쿡에게도 위기는 여러 번 찾아왔다. 2013년엔 애플의 주요 투자자이자 ‘기업 사냥꾼’으로 칼 아이칸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애플이 투자자에게 수익을 더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WSJ에 따르면 애플 자문단은 쿡에게 대응하지 말고 있을 것을 조언했지만 쿡은 반대로 움직였다. 칸에게 전화해 “저녁 한 끼 합시다”라고 말했다.
곧 둘은 칸의 뉴욕시 아파트에서 3시간 동안 식사를 했다. 감동을 한 칸이 쿡을 위해 디저트로 애플 로고 모양의 과자까지 특별 준비할 정도였다. 쿡은 칸의 조언을 받아들여 30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단행했고, 투자자들의 자본수익률(ROC) 상승에 기여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애플 주식을 사들이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배경이기도 했다. WSJ는 “쿡의 리더십은 (잡스보다) 덜 독단적인 게 특징”이라고 짚었다.

2010년 팀 쿡(왼쪽)과 스티브 잡스. 잡스는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로이터=연합뉴스
‘혼자 빨리’ 대신 ‘함께 멀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도 그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기부까지 했던 정통 민주당 지지자다. 그러나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주저하지 않고 전화기를 들어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트럼프가 좋아하는 골프 라운딩도 수차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팀은 문제가 있으면 항상 내게 전화를 한다”며 “훌륭한 경영인”이라고 쿡을 추어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맏딸인 이방카와 관계도 돈독히 다지고 있다. 기업 경영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은 묻어두는 유연함이 드러난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과 맏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맨 왼쪽),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뒷 줄 가운데)에게 애플 기업 현황을 설명하는 팀 쿡. 로이터=연합뉴스

애플, ‘꿈의 시총’ 2조 달러 돌파 목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경영은 효율성…최대 아닌 최고가 목표
잡스가 쿡을 처음 만났던 1998년, 애플은 매력적인 회사가 아니었다. 잡스가 CEO 자리에서 쫓겨났다가 복귀한 지 얼마 안 됐던 때,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밀려 1996년 2분기에만 7억 달러의 손실을 냈다. 반면 쿡은 IBM을 거쳐 컴팩에서 제조는 물론 조달과 재고 관리의 달인으로 업계에 정평이 나 있었다.
쿡은 CNBC에 이렇게 말했다. “스티브가 하도 여러 번 만나자고 하길래, 얘기나 들어보자 싶었죠. 만나는 순간 자기의 비전과 전략을 얘기하는 그에게 끌렸습니다. 애플로 이직한다고 하자 모두가 말렸죠. 하지만 무리(herd)를 따라가는 건 좋은 게 아니라는 게 내 믿음이에요.” 이후 쿡에게는 “잡스 뒤에 서 있는 진짜 실세”(CNN머니)라는 별명이 붙었다.

팀쿡이 올해 화상으로 진행된 세계 개발자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잡스가 디자인 전략에 빠져 공급망과 재고 관리를 놓칠 때면 쓴소리도 마다치 않았다. 기업의 기본을 놓치지 않은 셈이다.
애플만의 기본과 독창성도 잃지도 잊지도 않았다. 그는 지난달 하원 법제사법위원회의 반(反)독점 소위원회 청문회의 증인으로 출석해 “애플은 (삼성처럼) 시장 최대 규모가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최고"라고 말했다. 최고가 목표인 쿡의 애플은 곧 세계 최대 가치(시총 2조 달러)의 기업이란 왕좌에 오를 전망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