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여성들이 바깥에서 '헤어롤'을 하고 다니는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직장인 A(23) 씨도 최근 출근길이나 사무실에서 '헤어롤'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 못했을 때 자연스럽게 머리 모양을 잡아주는 데다,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고정해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입니다. A 씨는 밥을 먹으러 갈 때나 회의를 할 때는 헤어롤을 뺀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헤어롤을 하나의 액세서리처럼 착용하고선 셀카를 찍어 올립니다. 인터넷에 '헤어롤'을 검색하면 연예인들이 헤어롤을 착용한 모습이 연예 기사 헤드라인을 장식합니다.

걸그룹 EXID 하니가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에서 헤어롤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 SBS'런닝맨'캡쳐
집 밖에서의 헤어롤 착용이 언제부터 보편화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여학생들이 헤어롤을 한 채 등하교하는 모습이 과거에도 종종 보였지만, 요즘처럼 널리 퍼지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15년 걸그룹 EXID 멤버 '하니'가 한 예능프로에서 헤어롤을 말고 잠을 자는 장면이 화제가 되며 대중화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하니는 예뻐 보이고자 한 게 아니라 '그냥 나는 이렇게 한다'라는 것을 드러낸 거다"라며 "대중들 입장에서는 (하니가) 털털하다고 느낌과 동시에 '내가 뭘 하든 무슨 상관이야'라는 태도에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의 헤어롤 착용'에 대해 대중의 의견이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닙니다. 인터넷 공간엔 '헤어롤을 밖에서 하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곤 합니다.
정덕현 평론가는 "공적인 영역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타인에게 피해를 주냐의 여부인데, 헤어롤은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다"며 "그걸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행색이 그게 뭐냐'라는 식의 어른들의 시선처럼 다가온다"고 했습니다.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이 현상을 약간 다른 맥락에서 바라봅니다. 윤김 교수는 "완전히 준비된 모습을 보여줄 '남'과 준비 과정을 보여줘도 전혀 상관없는 '남'으로, 타인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틀 안에서 헤어롤이 유행했다"며 "극소수에게만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나머지 사람들한테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는 에너지 분배 차원에서 헤어롤을 바깥에서 마는 게 자연스러워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