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환영사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서 기대하는 생태학적 문명의 세계
 
[전문]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환영사
 
안녕하십니까. 이 시대의 화두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주제로 한 뜻 깊은 토론회에서 경제계 지도자들과 기탄없는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갖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정세균 국무총리님,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조대엽 위원장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19로 전세계가 멈춰섰습니다. 5천만명 이상이 확진됐고, 1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희생자가 얼마나 될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3차 세계대전이자 인류문명이 직면한 시련입니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은 비대면(언택트) 시대를 불렀고, 여행과 이주를 중단시켰습니다. 생산과 수요의 동시 붕괴로 급속한 자동화와 ‘일자리 없는 경제회복’의 암울한 미래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자유 질서가 가고 과거의 성곽시대(walled city)가 다시 도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결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인류는 생존이 걸린 시험대에 올라가 있습니다.
 
이 초유의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할지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문명사적인 과제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재앙은 인간의 이기심이 초래한 필연적 결과라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코로나는 인간이 생태계를 무시한데 대한 자연의 대응”이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제 인류는 과잉활동이 지구 생태계에 준 악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자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질주하는 탐욕의 열차에서 내려와 자연과 공존하려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리이타는 남도 이롭게 하면서 자기 자신도 이롭게 하는, 더불어 잘 사는 지혜입니다.  
 
장자(莊子)는 “내가 나를 잃는다”는 오상아(吾喪我)라는 말을 했습니다. “나를 해체해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만물이 서로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서 통하는 제물(齊物)의 상태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서양에서 공부한 핵물리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인도의 반다나 시바는 “탐욕으로 움직이는 ‘자기중심적 세상’(egocentric world)에서 나와 지구의 삶을 평화로이 영위하는 ‘생태중심 세상’(ecocentric world)으로 나가자”고 제안합니다. 자리이타와, 오상아, 생태중심 세상은 현생인류를 구원할 계시록입니다. 이걸 깨닫지 못하면 종말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말이 없는 바이러스는 인간이 만든 국경을 무시하고 끝없이 이동합니다. 가장 취약한 아프리카 대륙이 코로나19를 이겨내야 팬데믹도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그런데 위기극복에 앞장서야 할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싸워 왔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라는 지구적 방역협력체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은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무너진 글로벌 협력체제를 복구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방역선진국으로 인정받는 한국은 최소한 남북한과 중국, 일본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방역시스템 구축을 주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팬데믹의 압도적인 위협 앞에서 서로를 향한 각국의 분노는 사치입니다. 인류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국제사회는 지금 즉시 ‘사격중지’(Cease fire!)'를 선언해야 합니다. 국제협력이 작동해야만 인류의 생존이 걸린 치료제와 백신도 늦기 전에 개발‧생산되고 취약한 국가와 계층에게도 골고루 배분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역으로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고조됐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바이러스에 의해서 무너질 수도 있지만 기후재앙에 의해서도 멸종할 수 있습니다.  
 
인류 자신이 숙주인 지구를 위협하는 바이러스라는 엄중한 객관적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과 자연은 숙주의 생명이 끝나면 바이러스도 함께 사멸하게 되는 공동운명체의 관계입니다. 광활한 우주에서 현실적으로 인류가 머물 수 있는 유일무이한 행성인 지구에 대한 학대를 중지해야 합니다.  
 
유럽연합(EU)의 리더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경기부양책을 펼칠 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녹색경기부양(Green recovery)을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중국은 유라시아 전역에서 디지털로 연결된 탄소 제로 그린 인프라 전환 사업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임기 개시와 동시에 파리기후협약 복귀를 약속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동참할 것입니다.  
 
제러미 리프킨이 그토록 원했던 미국‧중국‧EU라는 ‘세 마리 코끼리’의 협력으로 탄소 제로 협력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거버넌스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친환경‧저탄소 경제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한국은 세계 11위의 탄소배출국이자 에너지 다소비형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탄소배출 감축은 우리에게 만만치 않은 과제입니다. 경제체질을 바꾸지 않고는 대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통해 2050 탄소중립선언을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한국은 초기 실패를 딛고 일어나 방역 모범국가가 됐습니다.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진단(Test)‧추적(Trace)‧치료(Treat)라는 3T 시스템을 완벽하게 가동한 세계 유일의 나라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T인 투명성(Transparency)을 유지한 것도 높이 평가합니다. 투명성은 우리가 일본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이 소프트 파워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서구를 영원한 모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무너졌습니다. 자유‧개인주의‧시민성‧의료시스템 어느 하나도 성공적으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한국은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의식을 살렸고, 시민성을 발휘했습니다. 뛰어난 의료시스템과 의료역량, 의료진의 헌신을 결합해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방역망을 구축했습니다.  
 
한국은 사회적 포용성과 동질성이 뛰어난 나라입니다. 돈 한 푼 없는 노숙인도 확진 판정을 받으면 바로 음압병실에 들어가 양질의 진료를 받고 완치돼 제 발로 걸어 나갈 수 있는 단 하나뿐인 나라입니다. 인권과 평등을 중시한다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한국이 세계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미래학자인 짐 데이터 교수는 “세계의 많은 국가가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을 롤모델로 지켜보고 있다”며 “지금의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라고 충고합니다.
 
이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전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보편적 가치로 승격시키는 밀도있는 의미 규정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의 성취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 관군이 외적에게 패퇴하면 자발적으로 일어났던 의병들의 희생적 공동체 의식은 소중한 역사적 유산입니다. 인간의 개별성과 고유성에 가치를 두면서도 공동체를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바치는 독특한 기질이 우리 DNA 속에 각인돼 있습니다.  
 
이런 유산을 압축적으로 정리할 인문적 언어, 매력적 사상의 구축이 절실합니다. 유럽의 귀족적 관용주의는 몰락했고, 미국의 자유, 중국의 통제도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는 서구에서 출현한 현대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야수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냥 풀어놓으면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자유와 개인주의를 바탕에 두고 성숙한 공동체 의식과 첨단의 과학기술을 하나로 결합한 새로운 문명의 이름을 숙고해야할 시간입니다. 휴머니티, 생명간 상호 의존성과 연결성에 바탕을 둔 인류 공동체 모델을 만드는 일에 우리가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배해온 수월성(meritocracy) 일변도 사고를 존엄성(dignocracy) 사고와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탐욕을 향해 질주하는 자본주의를 인간화하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뤄내야 합니다. 이걸 해낼 수 없다면 현생 인류에게 22세기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코비드19 팬데믹은 생산과 소비의 세계적 분업네트워크를 사정없이 망가뜨렸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경제구조를 바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중세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흑사병은 노동력 절감을 위한 기술 개발을 촉발했습니다. 구텐베르크는 노동력을 아끼기 위해 활판 인쇄술을 개발함으로써 정보의 확산 속도를 높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정보혁명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모든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ICT강국으로 인터넷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4차산업혁명의 기세가 되살아나면서 스마트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입니다. 인공지능,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교육, 서비스 경험 등의 인프라가 선도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뉴 노멀 시대의 정부는 낡은 규제를 철폐해 디지털 전환의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감시자본주의의 전개과정에서 데이터 이용자들이 입게 될 피해에 대해서도 세심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능히 해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혁신 기업과 창업 청년들이 더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역병으로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회적 약자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는 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인간의 얼굴을 한 소프트파워의 매력국가가 완성될 것입니다. 전세계의 인재와 자본‧기술이 대한민국에 몰려들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자연과 공존하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배려할 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인류가 지난 30년간 지구를 괴롭힌 오염 총량은 과거 2000년간 누적된 총량을 능가했습니다. 이대로 갈 수는 없습니다. 전례 없는 자연침범을 반성하고 고치는 생태백신, 기후변화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행동백신이 절실합니다. 생태백신, 행동백신은 화학백신보다 위력적일 것입니다. 더불어 잘 살겠다는 자리이타의 자세만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