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전두환 불출석 불허”라는데 변호인은 “출석 안한다” 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법원이 불출석을 불허했는데도 전 전 대통령 측은 “앞으로 출석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조계 안팎에선 “항소심 불출석은 피고인 스스로 변론권을 포기하는 행위나 다름없는데 광주광역시에서 열리는 재판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규정으로 해석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반응이다.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씨가 30일 1심 선고 공판에 마친 뒤 부인 이순자씨와 손을 잡고 광주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씨가 30일 1심 선고 공판에 마친 뒤 부인 이순자씨와 손을 잡고 광주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5분 만에 끝난 항소심 첫 재판 

광주지법 형사1부(부장 김재근)는 10일 오후 2시부터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그런데 전 전 대통령이 이날 재판에 불출석하면서 인정신문, 공소사실 확인 등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단 5분 만에 재판이 끝났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향해 헬기 사격을 했다'고 주장해온 고(故)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쓴 혐의(사자명예훼손)로 기소됐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날 항소심 첫 재판에서는 전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이 “피고인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근거를 찾았다”며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정주교 변호사는 이날 “형사소송법 규정과 법원행정처 실무제요 등을 살펴본 결과 항소심에서는 피고인이 불출석한 상태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정 변호사가 내세운 근거는 형사소송법 365조에서 있는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다시 정한 기일에 출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피고인의 진술 없이 판결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이 규정은 사실상 피고인이 항소심에 나오지 않으면 변론권을 포기하는 일종의 제재 규정인데 전 전 대통령 측은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규정으로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판부 “불출석 시 결심공판 속행도”

1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변호인 정주교 변호사가 항소심이 열린 광주지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변호인 정주교 변호사가 항소심이 열린 광주지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재판부는 이날 5분 만에 재판을 끝내면서 “관련법에 따라 피고인이 첫 공판기일에 불출석하면 재판을 진행할 수 없고 다음 기일을 지정해야 한다”면서도 “2회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피고인 없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또 “공판기일에 출석해야 하는 다른 형사재판 피고인과 달리 특혜를 주는 건 재판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재판 출석에 따른 변론권 보장은 피고인의 권리인데 스스로 포기한 것을 출석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예외를 주는 것은 특혜라는 판단에 따른 말이다. 이들 두고 법조계 안팎에선 “피고인이 변론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헬기 사격을 부정한 전 전 대통령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를 선고한 1심 재판 결과가 항소심에서 반복될 수 있고, 형량이 늘어날 여지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변론권 포기 용인으로 봐야”

10일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이 열린 광주지법 앞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0일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이 열린 광주지법 앞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에 5·18단체와 조비오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 등 피해자들은 “전 전 대통령 측에게 무죄를 주장할 기회도 줘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5·18단체와 피해자 측 변호인 김정호 변호사는 “(재판부의 이날 판단은) 피고인의 변론권 포기를 용인한 것”이라며 “1심 재판에서 유죄를 받았다면 항소심에서 절박하게 새로운 증거를 내놔야 하는데 오히려 재판에 비협조 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또 “다른 항소심 재판과 마찬가지로 재판에 나오지 않겠다는데 변론권을 인정해줄 수는 없다”며 “재판부가 말한 대로 앞으로 2번 연속 재판에 출석하지 않으면 변론 기회를 주지 말고 빨리 결심 공판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gni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