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사찰 문건’까지…‘대선 후보’ 尹 네 번째 입건한 공수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친여 성향 시민단체가 넉 달 전 고발한 ‘판사 사찰 문건’ 작성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추가로 입건했다. ‘고발 사주’ 의혹을 포함해 공수처가 윤 후보를 피의자로 입건한 네 번째 사건이다.  

공수처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를 네 번째로 입건했다. 윤 후보가 8일 오후 국회 헌정회를 예방해 회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공수처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를 네 번째로 입건했다. 윤 후보가 8일 오후 국회 헌정회를 예방해 회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공수처는 “한 시민단체가 ‘판사 사찰 의혹’으로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피고발인 중 윤 후보를 지난달 22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입건하고 이같은 사실을 지난 5일 고발인 측에 통보했다”고 8일 밝혔다. 사건의 주임검사는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맡았다.

서울행정법원 “尹징계 적법” 1심 판결 근거 수사 착수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윤 후보가 검찰총장이던 지난해 2월 당시 검찰이 관련 문건을 작성하는 한편, 이와 관련된 수사를 막았다며 지난 6월 공수처에 윤 전 총장을 포함해 검찰 간부들을 고발했다. 당시 피고발인은 윤 후보를 비롯해 조남관 전 대검 차장, 조상철 전 서울고검장, 명점식 서울고검 감찰부장, 한동훈 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등 6명이었다. 공수처가 이 가운데 윤 후보만 콕 집어 4개월 뒤 정식 입건한 것이다. 

‘판사 사찰 문건’ 의혹은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이던 성모 부장검사가 ‘주요 특수·공안사건 재판부 분석’이란 제목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및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등 담당 재판부 판사 37명의 출신 고교·대학, 주요 판결, 세평 등이 적힌 9페이지 분량의 문건을 작성·배포했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윤 후보에 대해 징계를 청구하면서, 이 의혹을 6개 징계 사유의 하나로 포함했다. 윤 후보가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에 재판부 분석 문건을 작성하게 한 뒤 대검 반부패·강력수사부 및 공공수사에 전달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이를 바탕으로 윤 후보에게 정직 2개월 처분을 의결했다. 그러자 윤 후보는 징계 처분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에서 승소해 검찰총장에 복직했다. 서울고검도 이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달 윤 후보가 제기한 징계처분 취소소송 1심 본안 재판에서 이를 징계 사유로 인정하며 법무부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정용석 부장판사)는 “원고(윤 후보)가 재판부 분석 문건 작성이 완료된 후 보고받았는데도 위법하게 수집된 개인정보를 삭제·수정 조치하지 않고 오히려 문건을 대검 반부패부와 공공수사부에 전달하도록 지시했다”고 적었다.

공수처는 이 1심 판결을 근거로 수사 착수를 결정했다고 한다. 공수처는 입건 배경에 대해 “고발장 접수 후 윤 후보가 제기해 진행 중인 징계처분 취소소송 1심 선고가 예정돼 이를 지켜보기로 했었다”며 “서울행정법원의 지난달 14일 1심 선고 후 해당 판결문을 분석‧검토한 결과 직접 수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공수처가 입건한 피고발인은 윤 후보 1명뿐이다. 다른 피고발의 경우 향후 입건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공수처의 방침이다. 입건 이후 2주가 지나서야 고발인에게 통지를 한 데 대해 공수처는 “입건 당시 윤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 중인 점을 고려했다”고 했다.

공수처가 윤 후보와 관련해 진행하는 사건은 모두 4건이다.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을 비롯해 옵티머스 펀드 사기 부실 수사 의혹,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사건 수사방해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고 있다.

공수처가 판사사찰 의혹 관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입건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지난 4일 출근하는 모습. 뉴스1

공수처가 판사사찰 의혹 관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입건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지난 4일 출근하는 모습. 뉴스1

 

윤 캠프, “검찰 무혐의 났는데…‘윤석열 공격처’ 전락”

 
이중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집중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윤 후보가 지난해 4월 검찰총장 재직 당시 범여권 인사 등에 대한 고발을 하는데 관여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9일 윤 후보를 입건한 이후 이달 2일과 3일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과 김웅 국민의힘 의원을 잇달아 소환하는 등 조사의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현재 공수처는 윤 후보와 해당 의혹과의 연관 관계를 찾는데 난항을 겪고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고발 사주 의혹이 두 달 가까이 수사가 진행됐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는 가운데, 새로 입건한 판사 사찰 문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수사를 할 여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이날 입건 소식에 대해 야당에선 거센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윤 후보 캠프의 최지현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공수처가 ‘정권 비호처’, ‘윤석열 공격처’로 전락했다”며 “공수처는 이미 판사 사찰 의혹에 대해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났는데도 야당 대선 후보를 경선 기간에 서둘러 입건했다”고 비판했다.

손준성, 공수처 국가인권위에 진정…“방어권 침해”

고발 사주 의혹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전 수사정보정책관은 이날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의 체포영장 청구 후 구속영장 기각, 지난 2일 피의자 신문에서 변호인 조력권 등을 심각하게 침해받고 모욕적, 억압적 조사를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손 검사 변호인인 박사의 변호사는 “공수처는 경선일정 등의 정치적 이유로 피의자 소환을 겁박했고, 도주의 우려가 전혀 없는 데도 기습적으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자 재차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언론에 보도된 이후 청구사실을 통지해 방어권을 형해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2일) 피의자 조사 과정에서도 주임검사에 대한 면담요청을 거절하고, 변호인에게 ‘공격적으로 나온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한다’, ‘쓸 데 없는 데에 힘 낭비하지 말라’는 등 비상식적인 언행으로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의 진술 기회를 제한하는 등 억압적인 행태를 보여 정당한 방어권 보장을 위해 인권위에 진정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