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플러, 마지막 홀에서 4퍼트 하고도 마스터스 우승

우승 후 부인 메리디스와 포옹하는 스코티 셰플리. [AFP=연합뉴스]

우승 후 부인 메리디스와 포옹하는 스코티 셰플리. [AFP=연합뉴스]

스코티 셰플러(미국)가 11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벌어진 시즌 첫 메이저대회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최종라운드 1언더파 71타, 합계 10언더파로 2위 로리 매킬로이를 3타 차로 따돌렸다.

지난 3월 중순 열린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1라운드에서 매킬로이는 7언더파 65타를 쳤다. 그러나 바람이 분 2라운드 이븐파에 그쳤고 3, 4라운드에서는 4오버파씩을 쳤다.

매킬로이는 화가 난듯하다. “그린이 너무 딱딱해 공이 서지 않고 러프는 너무 길어 경기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또 “코스가 이렇게 어려우면 오히려 변별력이 떨어지고 유명 선수들이 참가하지 않아 B급 대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경기에서 우승한 선수가 스코티 셰플러다. 그는 아무런 불만도 없이 얼음처럼 차갑게 경기하면서 6언더파로 챔피언이 됐다.  

셰플러는 2018년 Q스쿨 마지막 홀에서 파를 해 간신히 2부 투어 출전권을 얻었다. 2019년 2부 투어에서 올해의 선수상을 탔고 2020년 PGA 투어에 올라왔다.  


스코티 셰플러. [AP]

스코티 셰플러. [AP]

지난해 우승 기회를 몇 차례 놓쳤지만 올해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지난 2월 관중들이 시끄럽기로 유명한 WM피닉스 오픈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매킬로이가 “플레이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 아널드 파머에서 우승했으며, WGC 델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강호들을 거푸 꺾고 우승했다.  

5경기, 43일 만에 3승을 한 그는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번 마스터스에서 그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타이거 우즈의 복귀에 모든 눈이 쏠렸다. 

셰플러는 타이거 열풍 속에서 조용히 점수를 줄였다. 경쟁자들과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마지막 홀에서 4퍼트를 했는데도 3타 차가 나는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자신이 참가한 최근 6경기에서 4승을 했는데 이는 타이거 우즈 전성기 같은 기록이다. 당분간 스코티 셰플러의 시대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세계 랭킹 1위로 그린재킷을 입은 다섯 번째 선수가 됐다. 

최근 두 달 사이에 100억원을 벌었는데 아직 고등학교 때 아버지에게서 받은 픽업 트럭을 몰고 다니는 털털한 사내다. 2년 전 결혼했다. 

캐머런 스미스가 12번 홀에서 티샷하고 있다. 사고가 유난히 많은 이 홀에서 스미스는 티샷을 물에 빠뜨리고 트리플 보기를 하면서 힘을 잃었다. [AP]

캐머런 스미스가 12번 홀에서 티샷하고 있다. 사고가 유난히 많은 이 홀에서 스미스는 티샷을 물에 빠뜨리고 트리플 보기를 하면서 힘을 잃었다. [AP]

 
잭 니클라우스도 대회를 앞두고 라커룸에서 코스가 어렵다는 불만을 터뜨리는 선수는 경쟁자 목록에서 제외했다. 타이거 우즈도 그랬다. 

이날 셰플러의 가장 큰 경쟁자는 챔피언조에서 3타 차로 경기를 시작한 캐머런 스미스였다. 올해 PGA 투어 최저타 기록을 세웠고,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강호다.

스미스는 1, 2번 홀에서 버디를 하면서 쫓아갔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스미스로선 11번 홀에서 버디를 잡은 것이 불운이었는지도 모른다. 

유난히 사고가 많이 터지는 12번 홀에서 스미스가 티샷을 먼저 쳐야 했다. 그의 티샷은 오른쪽으로 밀려 물에 빠져버렸다. 스미스의 실수도 있었겠지만 12번 홀 상공의 방향을 알 수 없는 바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스미스의 샷을 본 셰플러는 아예 그린 왼쪽 밖으로 쳐 일단 공을 살려 놓고 파세이브를 했다. 스미스는 트리플 보기를 했다. 두 선수의 승부는 12번 홀에서 끝났다. 

로리 매킬로이는 이날 신들린 듯한 경기를 했다. 10대 때처럼 아무런 두려움 없이 스윙했다. 매킬로이의 볼은 하늘 끝까지 솟구치는 듯했다. 버디 6, 이글 1개로 무려 8타를 줄였다.

마지막 홀 벙커에서 홀인시킨 후 기뻐하는 매킬로이. [AFP=연합뉴스]

마지막 홀 벙커에서 홀인시킨 후 기뻐하는 매킬로이. [AFP=연합뉴스]

마지막 홀에서는 티샷과 두 번째 샷이 모두 벙커에 빠졌는데도 그린 사이드 벙커샷을 홀에 넣어 버디를 잡아냈다.

 
그러나 1오버파로 선두와 10타 차로 출발해 의미가 없었다. 매킬로이는 2011년 마스터스 최종라운드에서 4타 차 리드를 날리고 11년 동안 우승하지 못했다. 그래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매킬로이는 “오늘 좋은 경기를 했으니 내년을 기약하겠다”고 말했다.

얼음장처럼 차갑던 셰플러도 사람이었다. 마지막 홀 그린에 올 때 눈물을 글썽였다. 마음이 흔들려서인지 그린에서 4퍼트를 했다. 보기 퍼트가 안들어갔을 땐 얼굴을 부여잡고 아쉬워했다. 그래도 4퍼트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는 "오늘 아침 와이프에게 안겨서 아기처럼 엉엉 울었다. 내가 메이저 우승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서 스트레스가 너무나 심했다. 와이프에게 나를 달래줬다"고 말했다.  

경기 후 캐디와 악수하는 타이거 우즈. [AFP=연합뉴스]

경기 후 캐디와 악수하는 타이거 우즈. [AFP=연합뉴스]

 
타이거 우즈는 주말 3, 4라운드 모두 6오버파 78타를 쳤다. 합계 13오버파 47위다. 성적이 좋지 않아 아침 일찍 출발했고, 챔피언조가 첫 티오프를 할 때 경기를 마쳤다. 그러나 마지막 홀에서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3위로 출발한 임성재는 3타를 잃어 1언더파 공동 8위다. 김시우는 7오버파 공동 39위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