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대표해 2022 고양 태권도품새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하브릴로프 가족. 왼쪽부터 아들 다비드, 아버지 루슬란, 딸 예바.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4/21/2b3ecef0-5a10-4e8b-b637-5dda495ffa50.jpg)
우크라이나를 대표해 2022 고양 태권도품새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하브릴로프 가족. 왼쪽부터 아들 다비드, 아버지 루슬란, 딸 예바. [연합뉴스]
“조국 우크라이나에 머물고 있는 친구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자’고 말하고 싶어요. 꿈은 반드시 이뤄져요. 우크라이나는 할 수 있어요.”
21일 고양시 킨텍스에서 개막한 2022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 출전한 14세 우크라이나 소년 다비드 하브릴로프는 국제대회에 출전한 심경을 묻는 질문에 차분한 어조로 어른스런 대답을 내놓았다.
다비드와 여동생 예바 하브릴로바(12)는 매니저 역할을 맡은 아버지 루슬란 하브릴로프(43)와 함께 지난 18일 한국 땅을 밟았다. 러시아가 일으킨 침략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지만, 태권도 종주국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서 우크라이나의 기상을 보여주고 싶어 용기를 냈다.
![2022 고양 태권도품새세계선수권대회에 유소년 페어부문에 참가한 다비드(왼쪽)와 예바 남매.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4/21/d4d1ec06-7042-4ca6-aab2-8e6aec1aafb9.jpg)
2022 고양 태권도품새세계선수권대회에 유소년 페어부문에 참가한 다비드(왼쪽)와 예바 남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 폴타바에 거주하는 세 가족은 당초 전쟁으로 하늘 길이 막혀 대회에 참가하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세계태권도연맹(WT)과 대회 조직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우회로를 찾아냈다. 자동차로 30시간을 달려 폴란드로 건너간 뒤 비자를 발급 받아 지난 18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폴타바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루슬란 씨는 “태권도 종주국을 방문할 기회를 얻어 영광”이라면서 “지난 2월 크로아티아 대회와 지난달 우크라이나 대회 출전을 목표로 열심히 연습했지만 전쟁으로 인해 기회를 잃었다. 기적처럼 한국행이 성사 돼 감사한 마음 뿐”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당초 이번 대회에 6명의 선수를 파견할 예정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다비드와 예바 남매만 한국 땅을 밟았다. 루슬란 씨는 “우리 고향 폴타바는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이자 주요 교전지) 하리코우와 140㎞ 가량 떨어져 있는데, 러시아 포격으로 폐허가 됐다”면서 “함께 훈련하던 선수들은 모두 피난을 떠났지만 우리 가족은 남았다.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민들에게 도장을 숙소로 내주고 물과 음식을 제공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코치 또한 징집대상자여서 우크라이나를 떠날 수 없었다”면서 “우리 아이들은 폴타바에서 800㎞ 가량 떨어진 오데사에 머물고 있는 코치와 화상 대화 서비스를 이용해 원격으로 훈련했다”고 덧붙였다.
![2022 고양 태권도품새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다비드와 예바 남매가 경기 후 매니저 자격으로 참가한 아버지 루슬란 씨와 한국식으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4/21/534378d1-edfa-4ba0-b86b-16b200f78b22.jpg)
2022 고양 태권도품새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다비드와 예바 남매가 경기 후 매니저 자격으로 참가한 아버지 루슬란 씨와 한국식으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린 남매도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했다. 아들 다비드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에서 청소를 하며 피난민들이 편히 지낼 수 있게 도왔다”면서 “전쟁으로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분들이 많아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품새선수권 출전을 결정한 건 ‘평화는 승리보다 소중하다(Peace is more precious than triump)’는 세계태권도연맹의 슬로건을 품새 동작으로 구현하고 싶어서다. 다비드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접하면 ‘태권도 선수들이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국제무대에서 노력한다’며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바는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고 싶어 꾸준히 노력했다”면서 “지난해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품새 클럽선수권대회에서 오빠와 함께 개인 및 남녀 페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고 했다.
![태권도 품새 동작을 선보이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다비드(왼쪽)와 예바 남매.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4/21/5801f5ba-eb38-464d-8838-8befca707283.jpg)
태권도 품새 동작을 선보이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다비드(왼쪽)와 예바 남매. [연합뉴스]
7년 가까이 태권도를 수련한 남매는 2년 전부터 겨루기 대신 품새를 연마해왔다. 대회 첫날 열린 유소년부(12~14세) 페어(2인조) 경기에서 13개 팀 중 7위에 올라 8팀이 겨루는 결선에 진출했다. 에바는 22일 유소년부 여자 개인전, 다비드는 23일 유소년부 남자 개인전에 각각 출전한다.
루슬란 씨는 잡아먹으려는 새에 맞서 싸워 끝내 살아남은 개구리 이야기를 다룬 우크라이나 전래 동화를 소개한 뒤 “역경을 극복하고 한국 땅을 밟은 우리 가족처럼, 우크라이나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24일 대회 일정을 모두 마친 뒤 세계태권도연맹 본부, 국기원 등을 방문하고 26일 귀국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