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9일 상암산로 문화예술기획 봄에서 인터뷰후 포즈를 취하고 있는 가수 정태춘씨와 영화감독 고영재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대를 노래한 ‘음유시인’ 정태춘(68)이 엄혹한 시절 미군기지가 있던 경기도 평택에서 나지 않았다면, 중학교 현악반에 들어가 바이올린을 배우지 않았다면, 사회의 아픔에 몸서리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정태춘일 수 있을까. 또 만약에, 정태춘이 포크음악을 만나지 못했다면.
“포크가 말할 수 있는 길을 터줬어요. 처음에 노래 만들 땐 내가 살고 있던 시골 주변 이야기를 많이 했죠. 사랑‧이별 이런 게 전혀 아닌, 내 이야기를 한 것도 포크여서 가능했어요. 반주에 구애받지 않고, 내 기타 하나만 들고 노래할 수 있었으니까요. 포크의 바다에서 나는 이야기해왔다고 생각해요."
40여년 음악인생을 되짚은 다큐멘터리 ‘아치의 노래, 정태춘’(감독 고영재)의 주인공 정태춘의 말이다. 이번 다큐는 그가 아내이자 음악적 동지 박은옥(65)의 데뷔 40년(2019년)에 맞춰 2018년부터 3년간 촬영한 것이다.
‘우리 학교’(2007) ‘워낭소리’(2009) 등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고영재(53) 프로듀서가 자신의 제작사 인디플러그를 통해 직접 연출까지 맡아 이번에 감독 데뷔했다. 정태춘과 고 감독은 2006년 한미 FTA 스크린쿼터 운동 때 처음 만나 형‧동생으로 지낸 16년지기다. 오는 18일 개봉을 앞두고 두 사람을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문화예술기획 봄’ 사무실에서 만났다.
시대 호흡한 대표곡 28곡 "싱어롱 요청 많아"
다큐엔 1978년 자작곡 ‘시인의 마을’ ‘촛불’로 데뷔해 ‘MBC 10대 신인 가수상’을 받은 정태춘의 신인 시절부터 청계피복노조의 일일 찻집 참여를 계기로 정치폭력 희생자를 위한 모금공연,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 등 대형집회에 섰던 시절들이 영상 및 신문 자료, 카세트테이프 녹음 기록 등을 토대로 담겼다. 또 대중가요 사전심의 검열제도에 맞서 7집 ‘아, 대한민국…’을 대놓고 불법 음반으로 발매했던 1990년대와 이후 유행 가요에 밀려나 외면당한 시기 등을 대표곡 28곡과 함께 되짚었다.
![1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포크의 전설 정태춘(오른쪽부터)이 아내이자 음악 동지 박은옥과 함께 겪은 40여년 음악 인생을 대표곡 28곡과 함께 담아냈다. 사진은 다큐 속 자료 화면.[사진 NEW]](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15/53cf0d47-78ff-4b40-97aa-fd3e75326c16.jpg)
1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포크의 전설 정태춘(오른쪽부터)이 아내이자 음악 동지 박은옥과 함께 겪은 40여년 음악 인생을 대표곡 28곡과 함께 담아냈다. 사진은 다큐 속 자료 화면.[사진 NEW]
‘떼창’을 자극할 만큼 선곡이 풍성한데.
고영재: “실제 특별 시사회로 ‘싱어롱(따라부르기) 상영’ 요청이 많다.”
다큐 속 28곡은 어떻게 골랐나.
가난한 맞벌이가정 남매 죽음…가사 검열 반기
![다큐에는 정태춘이 10대 가수상, 가요 사전심의 철폐운동, 은퇴 선언을 거듭하며 겪은 부침과 사회적 영향도 담아냈다. [사진 NEW]](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15/ba412f41-0ed4-4069-a339-f43e19b59e0b.jpg)
다큐에는 정태춘이 10대 가수상, 가요 사전심의 철폐운동, 은퇴 선언을 거듭하며 겪은 부침과 사회적 영향도 담아냈다. [사진 NEW]
이런 현실을 노래한 가사를 사전심의해 고치라, 자르라 하는 검열제도에 그는 반기를 들었다. “내가 ‘시인의 마을’로 1978년 첫 데뷔할 때 곡당 3000원씩 비용을 부담하고 정부기관 사전심의를 넣었어요. OK를 안 해줘서 레코드사 사장님이 고쳐서 첫 앨범이 나왔는데, 검열 기관에선 ‘정태춘씨, 대중음악이 이런 얘기 해야합니까? 건전한 얘기하면 안 됩니까?’ 그러더라고요. 나는 우리가 구사하는 수많은 어휘를 갖고 풍부한 이야기와 감정과 상상력을 표현하고 싶은데 답답했어요.”
스스로 ‘노래로 사회적 일기를 쓴다. 메신저(messenger)’라 했다.
노래로 부르지 않았다면 잊혔을 법한 시대 풍경을 담은 가사가 많다.
![정태춘은 "포크가 내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고 했다. [사진 NEW]](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15/3db50c41-7b1f-46f7-9829-0f62e4797df8.jpg)
정태춘은 "포크가 내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고 했다. [사진 NEW]
고영재 "타협하며 사는 우리 돌아보게 해"

5월 9일 상암산로 문화예술기획 봄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가수 정태춘씨. 권혁재 기자
고 감독은 지금 정태춘 다큐를 내놓는 의미를 이렇게 밝혔다. “정태춘 음악은 어느 순간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내 모습을 뒤돌아보게 하죠. 지금 사회의 말들이 날카롭고 알맹이 없고 험해지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이 영화가, 정태춘 음악이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