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부터 시행되는 1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앞두고 환경부는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이디야커피 IBK본점에서 공개 시연회를 진행했다. 이날 매장에서 직원이 컵에 보증금 반환 바코드를 부착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당장 장사를 못 하게 생겼다.” 서울 관악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전민정(43)씨는 다음달 가게 운영이 벌써부터 고민이다. 다음달 10일부터 시행되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도’에 맞춰 라벨 스티커를 대량으로 구매해야 하는데, 당장 필요한 목돈이 없어서다. 전씨는 “500만원 정도의 현금이 필요한데, 자영업자한테 그만한 돈이 어디 있나. 신청만 해놓고 결제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씨의 고민은 환경부가 다음달 10일부터 점포 수가 100개 이상인 전국 카페·베이커리 매장(3만8000여곳)을 대상으로 일회용컵 보증금제도를 시행한 데 따른 것이다. 일회용컵에 담긴 음료를 구매할 때 300원을 부과하고 이를 돌려주면 300원을 돌려주는 제도다. “1년에 20억개 이상 버려지는 일회용컵을 줄이기 위해 고안해낸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환경부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가 시행하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일회용컵에 든 음료를 구매할 때마다 300원을 추가로 내고 반환하면 300원을 돌려받는 구조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홈페이지
그런데 이 정책 시행을 앞두고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코로나19가 끝나니 찾아온 불청객”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환경 보호라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책임과 비용은 전부 개별 가맹점주에게 전가한다는 것이 그들이 주장이다. 특히 코로나19 거리두기가 끝나 이제 매출이 정상화되는 시점이라 더욱 타격이 크다고 한다.
이 정책을 시행하는 환경부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폐업하라는 이야기냐” “현장을 알고 정책을 만들어라” 등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18일에만 100개 이상 올라왔다. 자영업자 100만명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지금 장사할 때가 아니다”며 “손님이 내놓은 컵 어디에다가 모아두며 그 냄새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가맹점주들의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한 프랜차이즈 점주들이 모여있는 단체카톡방. 독자 제공
점주들은 당장 늘어나는 금전적 비용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매장은 자신이 판매할 일회용컵 수량만큼 컵에 부착할 라벨지를 구매해야 한다. 이 라벨지 1장 금액이 6.99원이고 추가로 처리지원금(표준 용기 4원, 비표준 용기 10원)을 내야 한다.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점주가 포장용 음료 한잔을 팔면 기존에 없던 17원을 추가로 내야 하는 구조다.
한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가맹점주들에게 보낸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안내문. 해당 프랜차이즈는 비표준컵을 사용해 점주들은 한잔을 팔 때마다 17원의 비용을 내야한다. 김경일씨 제공
경상북도 영주에서 테이크아웃 전문 커피 매장을 운영하는 김경일(29)씨는 “코로나19 내내 간신히 버티다가 이제 매출이 좀 늘고 있는데, 정말 힘이 쫙 빠진다”며 “특히 박리다매식으로 파는 매장은 싸게 많이 파는 게 중요한데, 한달 순수익만 평균 40만원이 빠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갑자기 직장인 월급을 수십만원 깎으면 가만히 있겠냐. 환경 보호에는 동의하지만 모든 책임을 다 우리가 지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이들은 라벨지 구매 후 배송까지 수주가 걸리기 때문에 목돈을 들여 대량의 라벨지를 구매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손모(37)씨는 “당장 다음 달에 장사하려면 최소 3주 치를 선 구매해놔야 한다. 이 금액만 최소 600만원이다. 현금 일시불로 구매해야 하는데, 그런 여윳돈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며 “장사를 그만둘 때까지 수백만 원이 보증금처럼 거기 묶여있는 셈이다”고 토로했다.
한 프랜차이즈 점주들이 모여있는 단체카톡방. 독자 제공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환경부 관계자는 “제도의 근거가 되는 법(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처리의무자는 매장 사장님들이기 때문에 본사 등에 비용 등을 강제할 수 없다”며 “대신 미반환 보증금 등을 통해 지원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금으로 라벨을 구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선 “라벨지는 유가증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신용카드 구입이나 할부 구입 등은 제한이 있다”고 답했다.
자영업자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자 환경부는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지난 17일 환경부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의 볼멘소리가 많은 거 알고 있다”면서도 “이 정도는 양해를 구하면서 시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튿날 이 관계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항의에) 상당히 놀랐다. 그동안 프랜차이즈 본사 등과 논의를 해왔는데, 가맹점까지 잘 공유가 안 된 거 같다”며 “시행을 앞두고 가맹점 등을 대표하는 단체와 막바지 조율 중이다. 단계적으로 한다든지 검토를 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