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잘싸가 당 망쳐""李 당권 도전해야"…친문-친명 전쟁 시작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재명 의원이 1일 오후 인천 계양구 선거사무소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재명 의원이 1일 오후 인천 계양구 선거사무소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한 더불어민주당이 2일 본격적인 분란과 혼돈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윤호중·박지현 비대위’가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사태를 수습할 임시 지도부를 꾸릴 복안조차 내놓지 못했다. 지도부 공백을 틈타 친문재인계는 ‘이재명 책임론’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총공세에 나섰다. 향후의 당 헤게모니를 둘러싼 전쟁이 시작됐다.

윤호중·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등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총사퇴를 결의했다. 윤 위원장은 “비대위원 일동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하기로 했다”며 “지지해주신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비대위원장 직은 박홍근 원내대표가 임시로 맡았다가 이르면 조만간 새 비대위원장을 추대한다는 막연한 방향만 잡았다.

하지만 누가, 무엇을 위해, 얼마나 오래 비대위를 맡을지는 물음표로 남았다. 익명을 원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반성과 쇄신을 이끌 ‘혁신위원회’를 새 비대위와 함께 가동할지,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당길지 등에 대해선 ‘설왕설래’만 오갈 뿐”이라며 “향후 의원총회에서 임시 지도부 구성 방식을 논의한다지만 계파 간 갈등만 노출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말했다.

 

침묵 깬 이낙연 “선거 패배 책임자가 남 탓”…총력전 나선 친문

친문재인계와 이낙연계는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이번 선거를 이끈 이재명 의원(인천 계양을)을 향한 집중포화를 날렸다. 그 선봉에 지난 3월 대선 패배 이후 정치현안에 대해 말을 아껴온 이낙연 전 대표가 있었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국회에서 총사퇴 의사를 밝히는 입장문을 밝힌 뒤 기자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서둘러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국회에서 총사퇴 의사를 밝히는 입장문을 밝힌 뒤 기자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서둘러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대선) 패배를 인정하는 대신 ‘졌지만 잘 싸웠다’(졌잘싸)고 자찬하며 패인 평가를 밀쳐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과정을 정략적으로 호도하고 왜곡했다”며 “그런 방식으로 ‘책임자’가 책임지지 않고 남을 탓하며 국민 일반의 상식을 행동으로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연고가 없는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전체 선거판을 어렵게 만든 이 의원을 겨냥한 말이었다. 

그는 이어 “책임지지 않고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은 국민께 가장 질리는 정치행태인데도 민주당은 ‘그 짓’을 계속했다”며 다소 격한 표현도 썼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는 “이달 초 미국 유학에 나설 이 전 대표 입장에선 한참을 참았다가 메시지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윤호중,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등 비대위원들이 2일 오전 국회에서 비대위 총사퇴 입장을 발표하며 고개숙이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호중,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등 비대위원들이 2일 오전 국회에서 비대위 총사퇴 입장을 발표하며 고개숙이고 있다. 김성룡 기자

친문재인계에 속한 차기 당권 주자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 메시지를 뿌렸다. 홍영표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사욕과 선동으로 당을 ‘사당화’시킨 정치의 참담한 패배”라며 “대선 이후 ‘졌지만 잘 싸웠다’는 해괴한 평가 속에 오만과 착각이 당에 유령처럼 떠돌았다”고 비판했다. 전해철 의원도 “대선 패배에 책임있는 분들이 납득하지 못할 이유로 자기방어와 명분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며 “선거 패배에 책임이 있는 분들은 당의 쇄신 과정에서 한발 물러서달라”고 적었다. 이 의원의 차기 전당대회 도전을 원천봉쇄하려는 사전 포석이란 해석이 나왔다. 예정대로라면 민주당은 8월 차기총선 공천권을 주무를 새 당대표를 뽑게 된다.친문그룹인 신동근·강병원·윤영찬 의원도 잇달아 ‘이재명 책임론’을 페이스북에 띄웠다.

익명을 원한 친문계 재선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지역 인사들은 이 의원에게 1차적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 의원이 당대표에 도전하면 이들의 집단적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명계 “경기사수 성공했다…李 당권 도전해야”…책임론 완화 시도

 
반면에 이재명계는 맞대응을 피했다. 친명계 중진인 정성호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반성과 혁신을 못 한 것은 우리들의 잘못이다. 사심을 버리고 오직 ‘선당후사’로 단합해야 한다”고 적었다. ‘공동책임론’을 통해 이 의원을 향한 책임론을 완화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명계 핵심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재로선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경기지사 선거에 자신의 조직을 김동연 당선인에게 대거 내려보내 역전승을 일궈낸 이 의원에 대한 재평가가 곧 나올 것”이라며 “친문재인계가 너무 서둘러 ‘이재명 책임론’을 꺼낸 것 같다.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지사 선거에서 치열한 접전 끝에 신승한 김동연 당선인이 2일 오전 수원 팔달구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에게 손하트를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지사 선거에서 치열한 접전 끝에 신승한 김동연 당선인이 2일 오전 수원 팔달구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에게 손하트를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

 
이 의원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이날 오후 인천 계양구 선거캠프에서 기자들을 만나 질문 10개를 받았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또 다른 이재명계 핵심 의원도 “이 의원이 책임을 진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당의 전면에 서서 쇄신과 개혁을 이끌어야 한다”며 “자성하는 모습을 통해 비판 여론을 잠재운 뒤, 쇄신을 기치로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당파들은 격렬하게 맞붙을 조짐을 보이는 양 계파 모두를 비판하고 나섰다. 박용진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번에도 ‘졌잘싸’를 주장하며 ‘쇄신의 대상’인 분이 ‘혁신의 주체’가 되겠다고 하면 2년 뒤 총선도 이번 지방선거처럼 될 것”이라며 이 의원을 비판했다. 반면 이상민 의원은 “책임질 일은 책임지워야 한다. 하지만 억지 쓰지 말고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진 말자”고 지적했다. 친문재인계를 꼬집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