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19/e3028f9a-1437-4902-bc4b-746661259b44.jpg)
유럽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같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8일 11박12일 간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위기 극복 키워드로 ‘기술’을 화두로 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계에서는 주요한 시기마다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던 부친인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연상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9시40분쯤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는 길에 취재진이 출장 소감을 묻자 잠시 멈춰 서더니 “좋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이번에 고객들도 만날 수 있었고, 연구원들과 영업·마케팅으로 고생하는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며 “헝가리의 배터리 공장도 갔었고, BMW 고객도 만났다. 하만 카돈도 가 자동차 업계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만 카돈은 삼성전자가 2016년 인수한 미국 전장업체 하만의 오디오 브랜드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제일 중요한 것은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과 반도체연구소에서 차세대·차차세대 반도체 기술이 어떻게 될 지 느낄 수 있었다”며 소감을 이어갔다. 또 “시장의 여러 가지 혼돈과 변화·불확실성이 많은데 저희가 할 일은 좋은 사람을 모셔오고, 조직이 예측할 수 있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 중 헝가리와 독일·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 등 5개국을 다니는 강행군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ASML의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와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를 만났다. ASML은 7나노미터(㎚·1㎚는 10억 분의 1m) 이하 초미세 반도체 공정 구현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해 장비 확보전의 중심에 있다. 벨기에 루벤에서는 유럽 최대 규모의 반도체 연구소인 ‘imec’을 찾아 인공지능(AI), 바이오·생명과학, 미래 에너지 등 첨단 분야의 연구 현장을 둘러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등과 반도체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19/0db5696e-4d95-4d8c-9a67-6c6909c0e4fd.jpg)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등과 반도체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 부회장은 그동안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잘 다녀오겠다” “수고한다” 정도의 짤막한 인사나 표정으로 답을 대신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출장 소감을 밝힌 것이다. 지난달 2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대회에서는 삼성이 밝힌 450조원 투자 계획에 대해 “앞만 보고 가겠다. 숫자는 모르겠고, 그냥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달라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건희 회장과 닮은 느릿느릿한 말투였는데 특유의 힘이 실려 있었다는 얘기다.
이건희 회장은 주요한 시기마다 사회와 기업 경영의 화두를 제시했다. ‘샌드위치론’이나 ‘천재론’이 유명하다. 지난 200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취임 20주년 소감을 묻자 그는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라며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고생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앞서 1993년 그룹의 주요 임원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모아 “처자식 빼고 모든 것을 바꾸자”며 신경영을 선언했다. 이듬해 공무원 대상 특강에서는 “21세기에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론을 내놨다.
이장희 한국기업경영학회장(건국대 교수)은 “공급망 교란과 원자재 가격 상승,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기술 중심’으로 삼성전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삼성 임원진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19/c1fb5c05-05f7-4c7d-9824-41fa21901012.jpg)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삼성 임원진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중앙포토]
한편 삼성전자는 오는 21일부터 주요 경영진과 임원, 해외 법인장이 참석하는 상반기 경영전략 회의를 연다. 디바이스 경험(DX) 부문은 21~23일 수원 본사에서, 반도체(DS) 부문은 27~29일 화성 사업장에서다. 삼성전자가 연말 회의 외 상반기 전략회의를 따로 여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3년 만이다. 이 부회장의 참석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