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에 바닷일까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섬마을 어른들은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을 다 챙기지는 못했다. 막내는 한 달에 한 번 아버지 손을 잡고 장배에 오르는 특권을 누렸다. 장배는 섬을 돌며 주민을 태운 뒤 육지까지 데려다주는 상선이었다. 당시 섬에선 장배가 육지로 나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대처로 유학을 떠난 삼촌과 형, 누나도 장배를 타고 오갔다.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를 내고 있다.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사진 보령시]](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8/14/3ae57c84-a512-4257-9581-ca203c3ad73c.jpg)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를 내고 있다.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사진 보령시]
섬에선 고기가 늘 부족…소·돼지 애지중지 키워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들이 전통음식인 고기국수를 먹고 있다. [사진 보령시]](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8/14/d32d4481-6724-40cc-99ba-2b5605871cbf.jpg)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들이 전통음식인 고기국수를 먹고 있다. [사진 보령시]
원산도를 비롯한 보령 지역 섬에서는 특별한 날이면 상에 ‘고기국수’가 올라왔다. 삶은 돼지고기를 얇게 편을 썰어 고명으로 얹어 먹는 국수다. 육지와 달리 섬에선 논은 고사하고 밭도 넓지 않아 소를 키우는 집이 흔치 않았다. 고기가 워낙 귀해 소고기를 고명으로 얹을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나마 돼지고기도 양이 적어 얇게 썰었다. 얇게 썰어 식감이 좋고 이가 좋지 않은 어른들도 먹기 편했다고 한다.
잔칫날 돼지고기 얇게 썬 뒤 국수 고명으로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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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 상치림 모습.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이면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신진호 기자
고기국수는 칠순·회갑이나 결혼식 피로연 때마다 상에 올랐다. 섬에선 갈비탕이나 국밥을 대접하는 육지와 달리 고기국수를 손님에게 대접했다. 원산도 맞은편 태안 안면도에서도 같은 풍습이 있었다. 육지와 단절된 섬 만의 독특한 음식문화였다. 그런 고기국수는 20년 전쯤 자취를 감췄다. 고기는 넉넉해졌지만, 집 대신 결혼식장이나 대형식당, 뷔페에서 피로연을 열기 시작하면서 식탁에서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원산도 주민, 40년 전 추억 되살려 메뉴로 등장
추문식씨는 “(내가) 장가갈 때 마을에서 사흘간 잔치를 했다. 육지에서 하객이 오고 바다로 조업을 나갔던 주민들이 모두 잔치 음식을 먹으려면 그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며 “어릴 적, 청년 시절을 회상하며 고기국수를 메뉴에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를 내고 있다.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사진 보령시]](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8/14/0f96c93f-2dd1-4d1e-96d9-4d03a23c30b4.jpg)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를 내고 있다.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사진 보령시]
국수에 올리는 고기 고명은 돼지고기 앞다리나 뒷다릿살을 사용한다. 고기를 삶아낸 뒤 차갑게 식혀 회를 치듯이 얇게 썬다. 멸치로 국물을 내는 육지와 달리 바지락을 쓴다. 비린 맛이 없고 깔끔한 육수의 비결이다. 고기국수 반찬으로는 해풍(海風)을 맞고 자란 파김치를 곁들어 비로소 ‘삼합’을 이룬다. 주민들은 “잘 익은 파김치가 느끼할 수도 있는 고기의 맛을 감싸줘 담백한 맛이 난다”고 말했다.
보령 출신 개그맨 남희석, 고기국수 맛봐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 상치림 모습.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이면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사진 보령시]](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8/14/e45b6581-afb2-404f-a178-32f837a6b792.jpg)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 상치림 모습.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이면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사진 보령시]
사람들은 ‘고기국수’ 하면 제주도를 떠올린다. 삶은 건면에 돼지고기를 이용해 만든 육수를 넣고 고명으로 돼지고기를 수육으로 얹는다. 마을 잔칫날이나 큰 행사가 있던 날에 즐겨 먹던 음식이다. 양념을 거의 쓰지 않고 재료 자체의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제주도 고기국수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보령 섬마을 고기국수에는 어릴 적 추억과 애환, 엄마의 향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고기국수처럼 고명으로 고기를 듬뿍 넣는 면 종류 음식으로는 진주냉면을 꼽을 수 있다. 주로 잔칫날 등에 먹던 고기국수와 달리 진주 냉면은 진주 지역에 있던 소수의 요정에서 아주 엄격한 조리법에 의해 조리되던 고급 음식이었다. 평양냉면 등 다른 지역 냉면과 달리 진주냉면은 화려하고 다채롭다. 호사스러움의 정점은 육전 고명이다. 쇠고기를 도톰하게 잘라 달걀물을 입혀 부친 다음 길게 썰어 얹는다. 고명 육전 덕분에 진주 냉면은 푸짐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