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TS 입대 관련 여론조사를 언급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 배경은 BTS 공연 장면. 그래픽=박경민 기자
어른들은 청년기를 흔히 ‘무한한 가능성’으로 표현한다. 이런 어법을 따르자면 우리 모두 자신의 찬란할 미래를 유보한 채 병역 이행을 결단한 것인데, 사실 그런 비장함은 별로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저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는, 병역 의무를 이행한다는 단순함이 전부였다. 남성 전체에 병역 의무를 부과하기로 합의한 우리 사회의 오랜 공론(公論)을 존중하기에 마땅히 이를 이행해야 한다는 공감대 말이다. “한국에서 남자로 태어났으면 군대는 가야지.” 어른들이 했던 이 얘기를 이젠 나도 한다.
![지난 6월 20일 강원도 화천군 육군15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열린 입영식에서 입영 장병들이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9/07/d5bec6b3-f501-4734-8eff-06ae0d189acb.jpg)
지난 6월 20일 강원도 화천군 육군15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열린 입영식에서 입영 장병들이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민심을 읽고 재빨리 번복했으니 그걸로 된 걸까. 아니다. 애초에 이런 발상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원칙과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 매우 실망스럽다. BTS든 누구든 어떤 특정인에게 병역 특례를 적용하느냐 마느냐를 인기 투표와 같은 여론조사로 판단하겠다는 건 병역 문제를 우리 사회가 합의한 법적 질서 밖에서 찾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성일종 의원(국민의힘)은 “국가적 (BTS가 가져다줄) 이득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며 연일 국위선양과 경제적 파급효과를 병역 특례 적용의 근거로 제시했다. 성 의원을 비롯해 여야 정치인 모두 이런 논리가 매우 합리적이라 국민도 이해할 거라 믿으면서, 정작 그 결정의 책임은 국민(여론조사)에게 미루려 하는 눈치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수많은 내 또래 군필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입대를 앞둔 서울대 남자 후배는 평소 BTS 병역 특례에 찬성 입장이었지만 여론조사라는 단어 하나에 "뭔 X소리"라는 욕부터 했다. 이게 우리 또래의 정서다.
![BTS 병역 면제를 주장해 온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관련 법안 발의도 했다. [뉴스1]](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9/07/12b19c4f-ff94-4e02-a97e-58d7d17d8df1.jpg)
BTS 병역 면제를 주장해 온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관련 법안 발의도 했다. [뉴스1]
그런 의미에서 논란의 핵심은 BTS가 아니다. 정치인들이 병역 특례를 자신들이 선택적으로 베푸는 시혜로 보고 있다는 게 문제다. ‘국가의 명예를 세계만방에 떨쳤으니 특혜를 주겠다’는 발상, 이에 더해 여론조사로 결정하겠다는 안이한 판단은 대중의 인기를 노린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개개인의 삶의 방식 모두 공평하게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는 지금 청년들의 가치관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군 복무 중에 만났던 역도 선수 출신 한 수병의 자조 섞인 한탄을 기억한다. “권력 있고 돈 많은 사람들 전부 군대 빼던데. 정치인 본인이나 애들이나 군대 다녀온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BTS는 일도 아니지. ” 이런 말도 했다. “형, 나 나름 세계대회 메달리스트인데, 나라에서 군대는 가라더라. ” 이렇게 푸념하면서도 성실히 의무를 다한 건 사회의 원칙과 기준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역 특례가 정치권이 베푸는 하사품으로 전락하면 이 수병처럼 원칙대로 조금의 편의 없이 병역 의무를 다한 청년만 바보가 된다. 여론조사를 왜 BTS만 하나. 모든 사람이 군대 가기 전에 여론을 확인하자고 하면 어쩔 것인가.

군사용어 가운데 '정신전력'이라는 말이 있다. ‘조직화된 전투 의지’를 뜻하는 정신전력은 군인으로서의 임무 수행 의지와 자신감을 상징하는 군 전력의 중핵이다. 그런데 만약 군인이 병역을 이행하는 데 있어 불공정함이나 박탈감을 느끼거나, 국방의 의무라는 당위성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국가를 위한 헌신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정신전력은 붕괴되고 이에 근간하는 국방체계 전체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여론조사도, 경제적 파급효과도 다 무의미하다. 우린 그런 사회를 원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