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의 [도쿄B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너무 다른 일본. [도쿄B화]는 사건사고ㆍ문화콘텐트 등 색다른 렌즈로 일본의 뒷모습을 비추어보는 중앙일보 도쿄특파원의 연재물입니다.

일본 영화 '노후자금이 없어!'에서 노후자금 확보를 위해 아끼고 또 아끼는 주인공 아쓰코. 배우 아마미 유키가 연기했다.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추석 연휴 한국에서도 공개되는 일본 영화 '노후자금이 없어!'는 장기 불황 속 저출산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아쓰코는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아끼고 또 아끼지만 악재는 계속 터집니다. 불경기로 남편은 갑자기 실직을 하고, 딸은 남자를 데려와 호화로운 결혼식을 고집합니다. 거기에 일본이 풍요로웠던 시절 씀씀이 크게 살아온 시어머니와 합가를 해야 하는 역대급 위기가 닥쳐옵니다.
연금, '100년 안심' 이라더니

최근 일본 엔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소비자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 쌓여있는 엔화. 연합뉴스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이 보고서에 일본은 들끓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04년 연금 제도를 개혁하면서 '100년 안심'을 구호로 내걸었는데 갑자기 고액의 노후자금이 필요하다니 "정부의 연금 정책 실패를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나왔죠. 결국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보고서 내용이 국정 방침과 다르다"고 수령을 거부하며 상황을 무마하려 합니다.
흥미로운 건 많은 사람들이 '노후자금 2000만엔' 보고서에 흥분하면서도 실제론 노후를 위해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당시 조사에서 '노후 준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자산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40~60대 모두 3000만엔(약 2억8000만 원) 이상이라고 답했죠. 하지만 실제 보유한 자산은 40대가 780만 엔(약 7500만 원), 50대는 1132만 엔(약 1억870만 원), 60대~70대가 1830만 엔(약 1억7560만 원)이라고 답해 필요 금액보다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연금 개시 나이 75세까지 늦춰

노후자금 확보를 위한 주부의 분투를 그린 일본 영화 '노후자금이 없어!'의 한 장면.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출산율 저하, 인구 감소로 연금을 내는 이들이 줄면서 일본 공적 연금은 2002년부터 적자로 전환돼 2100년까지 누적 부족액이 480조엔(약 4600조 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고령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근본적인 개혁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정년을 연장하고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는 방식으로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일본에선 이미 올해 4월부터 연금 개시 나이 상한을 70세에서 75세로 늘렸죠.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출수록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 연금 생활 개시를 최대한 미루도록 유도한 '편법'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결론은 해피엔딩?
그런데 '노후자금이 없어!'의 아쓰코 가족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설명은 피합니다만 삶을 바라보는 자세, 라이프스타일을 대폭 전환하는 걸로 탈출구를 찾습니다. 영화는 역시 해피엔딩이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쯤엔 '나의 노후는?' 고민이 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