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에는 추석이라는 큰 명절이 있어요. 추석에 차례를 지낼 때 많은 과일이 상에 올라갑니다만 그중에서도 참 신기한 게 밤입니다. 밤은 다른 나무들에 비해서 꽃이 늦게 피죠. 보통 6월에 꽃이 피는데 음력 8월 15일인 추석 무렵이 되면 주먹보다도 더 크게 밤송이들이 매달리니 정말 뒷심이 강하다고 할 수 있어요. 밤나무는 참나뭇과에 속하는 나무라서 같은 참나뭇과에 속하는 상수리나무와 헷갈릴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상수리나무를 비롯한 참나뭇과 나무 열매를 흔히 도토리라고 해요. 도토리는 열매가 긴 돌기 모양의 비늘잎으로 둘러싸인 깍정이를 모자처럼 쓰고 있는데, 밤의 경우 그 규모가 더 커져서 뾰족한 가시로 이뤄진 껍질이 열매들을 감싸고 있죠.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추석 때 차례상에 밤이 올라가는 것과 더불어,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나 제를 올릴 때 사용되는 ‘위패’도 밤나무로 만듭니다. 왜 그 많은 나무 중에서 밤나무를 골랐을까요?
그 이유는 밤이 조상을 잊지 않는다는 뜻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밤을 심으면 싹이 나고 밤나무로 자라는데 그렇게 자란 밤나무가 다시 열매를 만들 때까지 땅속에 심었던 그 밤은 그대로 그 형태를 유지한다고 해요. 자손이 나와 자랐는데도 본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니 조상을 잊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죠. 물론 새로 심은 밤나무에서 밤이 열리기까지는 몇 년이 지나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오랫동안 본모습을 간직하지는 않습니다.
밤은 일반적인 다른 새싹이 돋아날 때와 달리 씨앗을 모자처럼 쓰고 땅 위로 올라오는 게 아니라 땅속에 씨앗을 두고 뿌리와 잎이 나와서 자라요. 뿌리와 줄기의 중간 부분에 오랫동안 껍질을 그대로 매달고 있는 특성이 있죠. 땅속에 심은 밤은 새로 돋은 새싹에 양분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그 모양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맞습니다만, 몇 년 지나면 썩게 되죠. 도토리나 은행처럼 크기가 크고 전분이 많은 씨앗은 비슷한 생태를 갖고 있는데 옛날 사람들은 그 모습이 멋져 보였나 봅니다.
가을에 밤을 주우러 밤나무밭에 가면 밤송이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죠. 뾰족한 가시에 찔릴까 봐 걱정되어서 조심조심 손을 내밀게 되는데, 밤송이에는 왜 가시가 있을까요?
밤은 덜 익었을 때는 억센 가시가 열매에 접근 못 하도록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그러다 밤이 익으면 밤송이가 저절로 벌어지면서 시간이 지나면 밤알이 쏙쏙 빠져요. 그때야 비로소 세상에 나갈 때가 된 것입니다. 아직 미완성인데 세상에 먼저 나가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수 있으니 다 익혀서 내보내는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런 밤을 보다 보면 간혹 뭔가 살짝 배우고선 한껏 아는 체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한편, 세상에 나온 밤알은 데굴데굴 굴러서 이동하기도 하지만, 주로 들쥐나 청설모 같은 설치류나 어치와 같은 저장하는 습관이 있는 새에 의해 옮겨져 땅에 묻혀요. 그렇게 묻어둔 밤들 중 청설모가 또 어치가 깜빡하고 먹지 못한 씨앗에서 싹이 나서 번식을 하기도 합니다. 조상을 잊지 않은 밤이 청설모의 깜빡하고 잊어버리는 일에 의해서 번식이 된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재미있죠. 소중 독자 여러분은 청설모와 달리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 추석 명절을 보내길 바랍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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