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영수회담 승부수? 7번 했던 이회창 "후회·분노·통탄뿐"

2001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청와대에서 영수회담을 갖기 전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1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청와대에서 영수회담을 갖기 전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간 몇 차례의 영수회담 뒤 돌아온 것은 후회와 분노, 통탄뿐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총재가 2000년 총재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영수(領袖)회담에 대해 밝힌 소회다. 이 전 총재는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총 7차례의 영수회담을 했다. 그는 회고록 『나의 삶 나의 신념』에서도 그해 영수회담에 대해 “현재 정국 정상화를 위한 수단일 뿐 앞으로의 정국안정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약발이 너무 짧았다”고 회고했다. 옷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옷깃과 소매를 뜻해 우두머리로 비유되는 영수(領袖)란 한자어를 빌린 영수회담은 한국 정치사에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일대일 만남을 일컫는 데 사용돼왔다. 양측의 지도자가 벌이는 담판이다 보니 교착 상태의 정국을 뚫어내는 ‘최후의 카드’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전 총재의 말처럼 성과보단 오히려 더 큰 불신이 싹트는 경우도 많았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수차례 단독 영수회담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진복 정무수석은 지난 14일 기자들과 만나 “과거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할 때는 영수회담이 일리가 있지만, 윤 대통령은 영수회담이란 용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윤 대통령의 순방 뒤 여야 대표·원내대표와의 만남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혀 1대1 만남에 대한 사실상의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역대 영수회담은 어땠을까. 이번 만큼이나 ‘밀당’과 ‘정치적 셈법’이 맞부딪쳤다. 거물들의 만남인 만큼 흥미로운 뒷이야기들도 전해졌다.

2005년 9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청와대에서 영수회담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5년 9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청와대에서 영수회담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정희의 약속, 이회창의 고함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도 영수회담은 있었다. 상대는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YS)이었다. YS는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다고 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어린 자식들만 데리고 혼자 사는데 무슨 욕심이 있겠냐. 권력에 미련 없다. 직선제와 민주화를 해놓고 물러나겠다. 사나이 명예를 걸고 비밀로 해달라”고 답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후 정치권에선 “YS가 부드러워졌다”는 말이 나왔지만 그는 1979년 의원직 제명을 당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YS앞에서 “집사람은 공산당 총에 맞아 죽었다”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까지 닦았다고 한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과거 민주화 동지였던 YS와 당시 야당 총재였던 DJ가 10차례의 영수회담을 했다. 두 사람은 만나면 민주화 투쟁의 기억으로 물꼬를 텄지만 대선자금 등 정치적 사안에선 확연한 의견 차이를 보였다. DJ는 1996년 영수회담 뒤 기자들에게 “칼국수를 내놨는데 그것도 대통령 말을 듣느라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정치권에선 “영수회담의 주도권은 역시 대통령에게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이회창 전 총재도 DJ와 7차례의 영수회담을 했다. 의미 있는 합의문이 나오기도 했지만, 서로 감정만 상한 경우도 많았다. 당시 한나라당에 ‘7번 만났으나 7번 뒤통수를 맞았다’는 뜻의 ‘칠회칠배(七會七背)’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특히 2001년 영수회담의 경우 이 전 총재가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양측 간의 갈등이 고조됐다. 한나라당에선 “차를 갖고 들어오던 여직원이 놀랄 정도로 이 총재가 고함을 쳤다. 엘리베이터로 안내를 받았지만, 그냥 내려왔다”고 언론에 직접 브리핑을 했다. DJ 측에선 “이 총재가 국가원수와의 회담을 왜곡 과장했다”고 반발하며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2015년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영수회담을 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2015년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영수회담을 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尹처럼 '영수' 거부감 보인 盧 

DJ 정권 이후 여야 간 단독 영수회담의 횟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정치권의 문화도 조금씩 변화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영수’란 표현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런 그도 대연정 제안을 계기로 2005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한 차례 영수회담을 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연정 언급은 다신 하지 말아달라”며 단호히 제안을 거부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수첩을 영수회담에 가져가지 않아 화제를 모았다. 당시 유승민 비서실장과 전여옥 대변인이 ‘모범 답안’을 정리해 박 전 대통령에게 사전에 보고하고 함께 논의했다고 한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MB)은 한·미 FTA와 소고기 파동 사태를 두고 손학규 당시 야당 대표와 영수회담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역시 그때의 야당 대표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영수회담에는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함께 참석했다. 이후 세 사람이 참여한 영수회담 합의문이 나왔는데, 주요 정치 현안이었던 연금 개혁과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등에 대한 공통된 의견이 모여 “의외의 성과가 있었다”는 반응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엔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 전 대통령과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현 경남지사)와의 영수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문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야당에 협조를 요청하는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때와 달리 양측은 1시간 20분 동안 팽팽한 입장차이를 보였고 공동 성명도 나오지 않았다. 당시 홍 전 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박 전 대통령과 MB의 수사를 언급하며 “죽어서 감옥에서 나오란 말이냐”“이제 그만해도 됐다”고 요구했고, 문 전 대통령은 “나도 안타깝지만, 청와대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고 답을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독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대통령실은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1:1 만남이 아닌 여러 당대표들과 대통령의 만남이 맞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입장이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독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대통령실은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1:1 만남이 아닌 여러 당대표들과 대통령의 만남이 맞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입장이다. 뉴스1

“尹, 李 제안 의도 알아 1:1 거부할 것”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간의 단독 영수회담 개최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원장은 “과거 영수회담은 이른바 빅딜을 통해 난국을 타개하는 수단으로 쓰였다”면서 “지금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마주한 난국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사법적 문제가 대부분이라 영수회담의 역할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 대표 입장에선 영수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과 1:1 구도를 만들고 싶을 것”이라며 “그 의도를 아는 윤 대통령 입장에선 단독 회담을 통해 이 대표를 만나줄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