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쟁할 때냐"…푸틴 편들던 시진핑·모디마저 돌아섰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왼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6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왼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과 인도 정상이 잇따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쟁을 그만해야 한다”는 쓴소리를 던졌다. 전장에서 러시아군의 연이은 패배에 이어, '친러' 성향 우호국들의 태도 변화까지 이어지자 국제사회에서 푸틴 대통령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BBC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15∼16일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각각 양자 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과 모디 총리 모두 7개월째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이를 두고 “푸틴 대통령에게 군사·외교적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할 때 아냐”…푸틴 압박한 모디

지난 16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오른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양자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6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오른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양자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6일 모디 총리는 푸틴 대통령 앞에서 “지금은 전쟁을 할 때가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이미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 통화로 이야기했듯 세계를 하나로 묶는 건 민주주의와 외교, 대화다. 어떻게든 전쟁의 출구를 발견해야 하며 당신도 거기에 기여해야만 한다”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시 주석도 지난 15일 회담 공식성명에서 “러시아의 ‘핵심 이익’을 지지한다” 면서도 “(중국은) 격동하는 세계에 안정을 주기 위해 대국으로서 노력할 것”이라며 전쟁 종료의 뜻을 에둘러 나타냈다. AP통신·NYT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비공개 회담에선 더 분명한 어조로 전쟁 중단 의사를 밝혔다. 푸틴 대통령도 회담 이후 “(우크라이나전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도 “전쟁 우려”…외교 타격 입은 푸틴

두 나라는 개전 이후 러시아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양국 모두 유엔의 러시아 규탄 결의안과 미국ㆍ유럽연합(EU) 등 서방이 주도하는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여 러시아 경제의 숨통을 틔워줬다. 인도는 에너지 안보 등 자국 이익에 맞춰 서방과 달리 러시아에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중국은 미·중 대결로 우군이 부족한 상황에 러시아와의 공조가 절실했다.


이런 두 나라의 태도가 변하자 푸틴 대통령이 외교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NYT는 “중국과 인도의 암시적 비판이 푸틴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갔을 것”이라고 전했다. AP는 “SCO회의에서 외교적 입지를 드러내고 국제적으로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려던 푸틴의 계획에 (중국·인도가) 찬물을 끼얹었다”고 평가했다.

전쟁 장기화로 악화된 경제…중·러 변화 이끌어

지난 17일 우크라이나군 탱크 부대가 노보세이우카에서 진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7일 우크라이나군 탱크 부대가 노보세이우카에서 진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외신은 두 나라의 태도 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경제난을 꼽았다. 국익을 위해 러시아 편을 들었지만, 전쟁 장기화로 심화한 식량·에너지난이 자국 경제에 피해를 주자 러시아와 거리두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디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전쟁으로 인한 식량·에너지 위기가 개발도상국에 더 가혹하다”며 경제에 미치는 우려를 언급했다. 알렉산더 가부예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서구 기술과 시장·자본에 대한 접근이 중요하다”며 “시 주석은 서방의 대러 제재가 대중 제재로 확산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수세에 몰리자 중국과 인도가 더 빨리 러시아에 등돌리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은 하르키우 일대를 수복한 뒤 동부 돈바스 지역의 루한스크주 탈환을 목표로 작전을 이어가고 있다. 루한스크는 러시아에게 이번 전쟁의 명분이 된 지역이다. 이 곳마저 우크라이나가 탈환하면 러시아 우호국들의 불안은 더 커질 수 있다.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나이절 굴드 데이비스 선임연구원은 “러시아는 전황뿐 아니라 외교 측면에서도 불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왼쪽)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AFP=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왼쪽)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AFP=연합뉴스

 
러시아·인도·중국과 함께 브릭스(BRICS) 일원으로 활동 중인 남아프리카공화국도 러시아에 전쟁 반대 의사를 밝혔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16일 미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이 아프리카 식량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분쟁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3월 러시아 규탄 유엔 결의안에 기권했을 당시와 입장이 달라졌다.

국제사회 고립에도…“푸틴 더 세게 나올 것”

미국은 러시아 우방국들의 변화를 언급하며, 다시 러시아 압박에 나서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푸틴이 국제사회에서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전쟁을 중단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NYT는 “많은 전문가는 푸틴이 더 많은 패배를 당하면 군사 행동의 강도를 대폭 높일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지만,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평화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이렇게 되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러시아가 순항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민간 시설을 공습한 것에 대해서도 “더 잔인한 작전의 전조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