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줘봤자 0.1%포인트?... '빛 좋은 개살구'인 금리인하요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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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해 말 직장을 옮긴 A(42세)씨는 올해 소득(연봉)이 800만원 가까이 올랐다. 금리인하요구권 요건을 갖췄다는 생각에 곧바로 은행 앱(어플리케이션)에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재직증명서 등 서류를 제출했다. 며칠 뒤 "심사 결과 금리를 인하할 정도로 신용등급이 개선되지 않아 금리를 유지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심사과정에서 요구권이 거절된 것이다. A씨는 “실패해서 아쉬운 마음보다 정확한 (은행의) 심사기준을 모르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2. 시중은행에서 오피스텔을 담보로 부동산대출을 받은 B씨(32세)도 올해 연봉이 올랐다. 1년간 꼬박꼬박 원리금을 상환해 대출 규모도 줄였다. B씨는 은행에 금리인하요구를 했고, 심사도 통과했다. 기쁨도 잠시 금리인하요구로 낮춰진 금리는 0.01%포인트에 불과했다. B씨는 “기존 3.03%였던 대출 금리가 3.02%로 내리는 데 그쳤다”며 “기대보다 감면율이 낮아 허탈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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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금리인하요구권에 대한 대출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 푼이라도 이자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신청자는 늘어나는 데 대상 상품은 제한적이고, 이자 감면율도 낮아 ‘빛 좋은 개살구’란 평가가 나온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10개 대출 상품 가운데 4개꼴로 금리인하요구권이 적용되지 않았다. 은행권의 심사 문턱을 넘더라도 1%포인트 넘게 금리 인하 혜택을 받는 사람은 11.1%에 불과했다. 18일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4대 시중은행(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은행)의 2019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금리인하요구권 운영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금리인하요구권은 대출자의 상환 능력이 개선됐을 때 금융사에 대출 금리를 낮춰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대표적으로 대출자가 취업이나 승진, 재산 증가, 대출 상환 등으로 신용 상태가 개선됐을 때다. 2002년부터 업계 자율로 운영되다가 2019년 6월 법제화됐다. 소비자는 시중은행, 인터넷전문은행 등 1금융권은 물론 저축은행 같은 2금융권에서도 신청할 수 있다.  


신용도가 개선됐음에도 금리 인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비대상대출’일 가능성이 크다. 김희곤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금리인하요구권이 적용되지 않은 비대상대출 상품은 4대 은행 기준 평균 38.8%에 달했다. 비대상대출이란 금융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차주(대출자)의 개선된 신용점수(신용등급)가 대출 금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상품이다. 사실상 금리인하요구권이 제한적으로 적용된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햇살론 등 정책대출을 비롯해 은행과 기업 간의 협약상품, 담보대출 등 신용등급에 따라 금리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 대출은 금리인하요구권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비대상대출 비중은 은행별로 하나은행이 전체 대출(252만 건) 가운데 172만건(68.3%)으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우리은행(33.8%), 국민은행(32.8%), 신한은행(20.4%) 순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차주가 어렵사리 심사 문턱을 통과하더라도 이자 감면율이 미미하다. 김희곤 의원실이 올해 상반기 4대 은행의 인하 금리를 0.1% 포인트 단위로 쪼개서 분석한 결과, 절반이 넘는 52.6%는 인하 금리가 0.1% 포인트 이하였다. 1%포인트 넘게 금리 인하 혜택을 받은 차주는 11.1%에 그쳤다.  

금리인하 요구를 거절당해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점도 소비자들이 답답해하는 부분이다. 의원실이 거절 사유를 분석해보니 대부분 ‘신용개선 요건 불충분’이었다. 이때 구체적으로 재산 늘어난 게 반영됐는지, 신용점수는 얼마나 더 올려야 하는지 등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금리인하요구권 활성화 방안’ 이 시행되면서 금융사들은 연간 두 차례 금리인하요구권을 정기적으로 안내하고 있지만, 기계적인 안내에 그치고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리인하요구 진행 절차, 특히 심사 절차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며 “복잡한 금리 산정 과정을 소비자가 알 수 없고, 금융권이 공개하지도 않고 있는 만큼 요구를 거절한다면 그 이유도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희곤 의원은 “금리인하 요구권이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으려면, 대상 대출 상품부터 확대되고, 인하 금리도 상환부담이 완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근 정부도 금리인하요구권 활성화를 위해 지난달부터 금융사들이 금리인하요구권 운용 실적을 공시하도록 했다. 반년 주기로 신청 건수와 수용 건수, 수용률과 이자 감면액 등 네 가지 항목을 공개한다. 은행 간 경쟁을 유도해 금리인하요구권이 적극수용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