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연합뉴스
A씨는 2015년부터 약 2년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를 161회에 걸쳐 받았다. 해당 병원은 사실상 줄기세포 연구 회사가 차린 곳이었는데, A씨는 이 회사 회장에게 5억9000만원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하게 되자 2016년부터 3년간 10여 차례 병원을 찾아가 소리를 지르거나 난동을 부렸다. 의사가 진료하지 못하도록 붙잡고, 계단에 드러눕거나 직원 목을 조르기도 했다. 2018년 관련 사건으로 법원에서 이 회사 회장을 만나자 서류뭉치를 얼굴에 던지거나, 병원의 다른 환자들이 듣도록 “줄기세포는 모두 사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A씨는 업무방해·명예훼손·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A씨 측근인 B씨 역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사람들이 지나는 길가에서 병원 의사에게 “사기꾼”이라고 하고 욕설을 해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를 받았다.
2020년 1심 재판부는 대부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벌금 250만원, B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다만 A씨가 병원에서 의사에게 “아주 저질이다”라고 말한 부분은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저질”이라는 표현은 주관적 평가라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구체적인 사실을 이야기한 건 아니라고 봤다.
2021년 2심 재판부는 A씨의 죄명을 3개에서 2개로 줄였다. 업무방해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2심 도중 회사 회장과 의사가 의료법 위반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영향이 컸다. 현행법상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차리는 것은 금지하는데, 이 병원의 경우 줄기세포 회사가 수익창출을 위해 시술하는 곳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A씨 측은 이 판결을 들면서 “이 병원의 ‘업무’는 형법상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여 “병원 운영 업무는 업무방해죄 보호 대상이 되는 업무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 병원에서 이뤄지는 의사의 진료업무 역시 마찬가지라고 봤다. 지난 2001년 대법원은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해 운영하는 행위는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2심에서는 A씨의 명예훼손과 폭행 혐의만 인정돼 벌금 액수는 100만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업무방해가 모두 의사를 상대로 이뤄진 점을 주목했다. 그러면서 “무자격자에 의해 개설된 의료기관에 고용된 의료인이 환자를 진료한다고 해서 진료행위까지 반사회성을 띠는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진료 업무가 업무방해죄의 ‘업무’가 될 수 있는지는 진료의 내용과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도, 2심은 세밀하게 심리하지 않았다고 봤다. 특히 A씨가 진료를 앞둔 의사를 붙잡는 등의 범행을 저지른 것은 다른 환자에 대한 진료행위를 방해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