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 사진 산업통산자원부
평상시에는 각국 정부가 공급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불필요한 조치를 자제하고, 공급선을 다변화하기 위해 투자확대, 물류개선, 공동 R&D(연구ㆍ개발) 등에도 노력하기로 했다. 14국 정부 관계자로 구성된 ‘공급망 위원회(Supply Chain Council)’도 출범한다. 공급망 안정화에 필수인 숙련 노동자의 육성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체계도 구축한다.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탈동조화(디커플링) 및 위험제거(디리스킹)에 주력하는 미국 입장에선 이번 합의가 대중(對中) 압박 동력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날 나온 발표를 보면 최근 주요 7개국(G7)의 공동성명보다는 대중 압박 강도가 크게 약하다는 평가다.
구체적으로 이번 합의는 주로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회원국 간의 공동 노력 방향을 서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중국 같은 특정국을 구체적으로 겨냥해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디커플링·디리스킹 같은 중국을 자극할 소지가 있는 단어도 뺐다.
여기에는 IPEF에 한국 등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다수 참여하고 하고 있고, 미국이 ‘전방위 중국 압박’이라는 지난 G7 정상회의 결과에 만족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위 조절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주요 핵심 원자재 등을 중국에 과의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리스크를 관리하겠다는 취지지, 중국과 디커플링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중국 견제’라는 키워드로 보기보단 공급망의 지속가능한 안정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로 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입장에서도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 당국자는 “협상 내용상 특정국을 표적으로 하는 것은 없다”며 “중국은 우리에 중요한 파트너이고, 중국과 양자 협력을 지속할 여러 대안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상현 원장도 “이정도 합의 수준에서는 중국의 강한 반발이나 보복을 우려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지정학적으로는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스스로 떠난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의 리더십 회복을 도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미국 상무부는 “IPEF 공급망 부문 협상 완료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도ㆍ태평양 전략을 뒷받침하는 주요 성과이자 미국 및 참여국가 소비자와 노동자, 기업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IPEF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주도로 지난해 5월 공식 출범했다. 미국과 한국ㆍ일본ㆍ호주ㆍ인도ㆍ태국ㆍ말레이시아ㆍ인도네시아ㆍ베트남ㆍ필리핀ㆍ싱가포르ㆍ브루나이ㆍ뉴질랜드ㆍ피지 등 14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IPEF에 참여하는 국가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비중은 약 41%로,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ㆍ30.8%)보다 높다. 다만 전통적인 무역협정과 달리 관세 인하 등 시장 접근을 확대하기 위한 논의는 빠져있어, 통상 협력 강화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IPEF는 지난해 9월부터 ▶무역 ▶공급망 ▶청정경제 ▶공정경제 등 4개 분야에서의 협상을 이어왔고, 이 가운데 공급망 분야에서 먼저 참여국 간 합의가 이뤄졌다. 나머지 3개 분야 협상은 향후 계속 이어진다. 미국은 올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전체적인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