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10일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남구갑)이 부산 남구 유엔평화기념관에서 열린 리차드위트컴 장군 조형물 건립을 위한 시민위원회 발족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트컴(Witcomb·1894~1982) 장군 조형물 건립을 위한 시민위원회는 위트컴 장군 순회 사진전을 연다고 7일 밝혔다. 사진전은 7일부터 다음 달 16일까지 부산지역을 순회하며 개최된다. 우선 10일까지 중구 중앙동 교보빌딩 앞에서 위트컴 장군 업적을 담은 사진 15점을 전시한다.
이어 남구 평화공원 내 위트컴 장군 조형물 건립 예정지(15~18일)와 도시철도 부산시청역(22~26일)을 거쳐 7월 10~15일까지 부산대 장전동 캠퍼스 중앙도서관에서도 전시회가 열린다.
사진전이 시작되는 중구 교보빌딩 앞은 1953년 부산역 대화재 당시 미군 제2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이었던 위트컴 장군이 이재민에게 군수물자를 제공했던 옛 부산역 터다.
당시 화재는 1953년 11월 27일 영주동 판자촌에서 시작됐다. 이 불로 주택 3132채가 불에 탔고, 이재민만 3만명이 발생했다. 하지만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해 정부도 이들을 돕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이가 위트컴이었다.

1954년 위트컴 장군이 부산 애린원을 방문해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전쟁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린 장군은 1954년 퇴역 후에도 한국에 남아 전쟁고아를 위해 헌신했다. 성조기 홈페이지 캡처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2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특별전-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위트컴 장군'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게 끝이 아니다. 그는 피란민에게 부족한 의료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미군 장병 월급의 1%씩 모으는 기금 운동도 했다. 직접 갓을 쓰고 도포 차림으로 거리로 나가 모금 운동을 해 미국 잡지 ‘라이프’에 소개되기도 했다. 덕분에 부산 메리놀병원 등이 설립됐다.
위트컴 장군은 1954년 퇴역 후에도 한국에 남아 전쟁고아를 위해 함께 활동하던 한묘숙 여사와 결혼, 전쟁고아 돕기와 미군 유해 발굴에 남은 삶을 바쳐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렸다. 1982년 7월 11일, 장군은 “한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이 공원엔 전쟁 희생자 총 2315명의 유해가 잠들어있다. 위트컴은 여기에 묻힌 유일한 장군이다.
위트컴 장군 조형물은 오는 11월 11일 한국전쟁 참전 유엔군 전사자가 안장된 부산을 향해 세계 각지에서 일제히 묵념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이라는 추모식에 맞춰 공개할 예정이다. 현재 시민위원회가 조형물 건립을 위해 모금 운동을 하고 있다. 6월 초 기준으로 목표액인 3억원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12일 '제40주기 리차드 위트컴 장군 추모식'이 부산 남구 유엔평화공원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리차드 위트컴 장군 묘지에 헌화 후 참배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