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주유소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125명이 숨졌다. 사상자 대부분은 최근 아제르바이잔이 벌인 군사작전 때문에 '인종 청소'가 빚어질까 우려해 탈출을 감행한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다.
26일(현지시간) 타스통신과 BBC 등에 따르면 전날 저녁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중심 도시 스테파나케르트의 고속도로 인근 주유소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주민 125명이 숨졌다. 앞서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 당국은 최소 20명이 사망하고 290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전했다. 부상자 가운데 다수가 위중한 상태라 사고 수습 과정에서 사망자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매체들은 전했다.
주유소가 폭발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피란길에 오른 이들이 차량 연료를 사려고 주유소에 줄지어 서 있는 중 폭발 사고가 발생해 사상자가 컸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사고가 일어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국제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에 속해 있지만, 12만명 가량의 아르메니아계 사람들이 자치 세력을 이뤄 살던 곳이다. 지난 19일 아제르바이잔이 해당 지역을 공격해 하루 만에 장악했고, 이어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아르메니아 정부는 26일 오전 기준 현지 주민의 12%에 해당하는 1만3500여명이 피란길에 올랐다고 집계했다.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1991년 소련 붕괴 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독립공화국을 선포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지역에는 아르메니아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자치군이 활동하고 있어 무력 분쟁이 자주 발생한다. 양측은 1994년 약 3만명가량의 전사자를 낳은 뒤 휴전했지만 2016년과 2020년에도 크고 작은 교전을 벌여왔다.
아제르바이잔은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았고, 아르메니아는 러시아를 파트너로 삼아 세력 균형을 이뤘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이 묶이고 아르메니아 상황이 어정쩡해지자 아제르바이잔은 "영토 내 '회색지대'를 없애겠다"며 지난 19일 공격에 나섰다.
현재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자치 세력은 휴전에 동의한 상황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자치 세력의 군대를 무장 해제를 하되 현지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제안을 하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회색지대를 없애고 재통합을 추진하겠다는 아제르바이잔의 계획이 사실상 아르메니아계 출신자들에 대한 불이익과 보복·차별 등을 불러올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앞서 아제르바이잔은 지난해 12월부터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아르메니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라친 회랑'을 봉쇄했다. 식량·의약품의 공급 통로인 회랑이 봉쇄되면서 주민들이 아사하는 등 인도주의 위기에 처했다고 아르메니아 정부는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