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현직 검사가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은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중앙포토
2014년 3월 A(당시 35세) 검사는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같은 로스쿨 졸업 후 검사로 임용된 뒤 지방의 한 검찰청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2016년 수료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이수한 그는 B(당시 57세) 교수의 권유에 따라 박사학위 논문 예비심사에 응시하기로 마음먹었다.
27일 대법원이 공개한 공소사실에 따르면 당시 B 교수와 A 검사는 대학원생과 조교가 A 검사의 박사학위 예비심사용 논문을 대신 쓰게 한 뒤 A 검사가 이를 자신이 작성한 것처럼 발표하기로 공모했다. 2016년 11월 하순쯤 B 교수는 성균관대 등에서 대학원생 C씨에게 ‘회사의 이익배당과 개시에 관한 형사법상 제재방안’이란 자료를 건넸다. 논문 제목과 목차 등이 적힌 문서였다. 한 달 뒤인 2016년 12월 5일쯤 C씨는 이 논문 제목을 ‘디지털 상황 하에서 기업회계에 관한 형사법적 제재방안 연구’로 바꿔서 A 검사에게 전달했다. 5일 뒤 A 검사는 이 논문을 박사학위 논문 예비심사에서 발표했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논문 대필 작업은 이어졌다. 2018년 7월 B 교수는 또 다른 대학원생에게 부동산신탁제도의 법적 개선 내용이 담긴 논문을 쓰게 했고 두 달 뒤인 9월 8일 대학원생을 통해 한 대학의 조교수인 A 검사의 동생인 D(당시 38세)씨에게 논문을 전달했다. 이날 D 교수는 이 논문을 자신이 작성한 것처럼 법학 연구소에 제출했고 논문은 같은 해 9월 30일 한 학술지에 게재됐다.
이들의 범행은 2019년 초 학계를 중심으로 논문 대필 의혹이 불거지고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진상조사에 착수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사준모(사법시험준비생모임)의 고발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검은 그해 1월 29일 B 교수의 연구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사 출신인 B 교수는 A 검사의 부친이 한때 최대주주였던 한 신탁회사와 법률자문 계약을 맺는 등 친분이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2019년 5월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A 검사 남매를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논문 대필 의혹이 불거지자 미국으로 도피한 B 전 교수엔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A 검사 남매가 막대한 재력을 지닌 A 검사의 부친에게 잘 보여 이득을 얻으려는 B 교수의 범행에 편승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수도권 한 검찰청에 근무하던 A 검사를 직무 정지했고 동생 D 교수도 소속 대학에 사직서를 냈다. 성균관대는 B 교수를 해임했다. 한때 부친 신탁회사의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기도 했던 A 검사 남매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엘케이비(2심부터) 등 유력 로펌에 소속된 전관 변호사들로 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소송에 대응했다.
하지만 1심과 2심은 A 검사 남매가 대학 등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봤다. 2020년 10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3단독 황여진 판사는 A 검사 남매에게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황 판사는 “엄정한 법을 집행해야 하는 검사의 지위인데 호의에 기대 다른 사람이 작성한 논문으로 예비심사를 통과했다”며 “교수는 누구보다 연구윤리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일반적 사례보다 엄격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2021년 10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1부(부장 김예영 장성학 장윤선)도 이들에게 1심과 같은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 검사 사건 자료는 B 교수 또는 B 교수의 지도를 받은 기타 대학원생에게서 대작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D 교수 역시 혼자 논문의 저자라고 할 수 없고, B 교수나 다른 대학원생, 다른 대학 강사가 공동 저자 이상의 지위를 가진다”고 밝혔다. A 검사 남매는 상고했다. 그사이 검찰은 2022년 3월 귀국한 B 전 교수를 그해 4월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논문 대필 의혹이 불거진 지 3년 만이었다.
반전이 발생한 것은 대법원에 와서였다. 지난 14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A 검사가 이 사건 예비 심사과정에서 지도교수인 B 교수의 수정, 보완을 거친 이 사건 예심자료를 제출했다고 하더라도 원장 등에게 오인과 착각 또는 부지를 불러 이를 이용했다거나 업무방해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학위청구논문의 작성계획을 밝히는 예비심사 단계에서 제출된 논문은 아직 본격적 연구가 이뤄지기 전인 점▶예비심사과정에서 목차 수정과 연구방향 제시 등 심사위원의 조언과 지도가 주된 내용을 이루고 예비 심사에서 불합격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점 등이 고려됐다. 대법원은 “이 사건 예심자료가 B 교수 등에 의해 대작됐고 원장의 박사학위 논문 예비심사 업무가 방해됐다고 단정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 판단에 업무방해죄의 위계 및 업무방해의 위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다만 A 검사의 동생인 D 교수의 상고는 기각했다.
김성하 논준모(논문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 연구소장은 “법리적으로 업무방해죄가 인정되지 않을진 모르지만 학계의 실상을 모르고 한 판단”이며 “지도 교수가 모든 학생에게 이런 편의를 제공하는지 생각해보면 상당히 비상식적인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대법원 판단은 A 검사가 논문을 직접 쓰지 않았거나 다른 사람이 썼다는 것이 확실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남이 대부분이 해준 것을 이름만 바꿔 낸다는 건 예비심사용일지라도 연구 윤리상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을 받는 B 전 교수는 다음 달 6번째 재판을 앞두고 있다. 검찰은 B 전 교수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당초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장수진 판사는 지난 1월 19일을 선고기일로 지정했으나 A 검사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나온 뒤로 기일을 연기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