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2월 경기도 양평군의 한 2차선 국도 인근에서 흰색 강아지가 뛰어다니고 있다. 사진 법무법인 엘앤엘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얼어붙어 있던 A씨가 강아지 쪽으로 다가온다. 강아지는 도로 위에 꼼짝 않고 누워 있다. A씨가 강아지를 들여다보는 사이, 도로변에 차를 댄 SUV 차주 B씨(38)가 다가온다. 차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온 B씨와 함께 무릎을 굽히고 강아지를 살펴보던 A씨에게 한 차량 헤드라이트가 빠르게 가까워진다. 시속 92km로 달린 또다른 SUV 차량에 치인 B씨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A씨는 왼쪽 다리가 잘리는 등 전치 24주의 중상을 입었다. 법원에 제출된 약 7분 짜리의 사건 현장 폐쇄회로(CC)TV 영상엔 이 같은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의상자 인정해달라”…복지부는 불인정
재판에서 쟁점이 된 건 A씨가 구조하려던 강아지가 반려견인지와 A씨의 행위를 의상자법상 ‘구조행위’에 해당하는지다. 죽은 개가 ‘타인의 재산’에 해당한다고 보려면 주인이 있는 강아지라는 사실이 증명돼야 한다. 들개의 경우 현행법상 주인이 없는 물건인 ‘무주물’로 취급된다.
A씨 측 정경일 변호사는 “당시 강아지에겐 목줄이 달려 있어 누군가의 반려견임을 알 수 있다”며 “강아지는 만 5세 아동 정도의 크기로 도로에 쓰러져 있으면 2차 사고가 날 수 있었다. 다른 운전자들이 다치거나 자동차가 파손되는 추가 피해를 막고, B씨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도 구조행위를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1심 “반려견 증거 없어…소형견, 운행 지장 없다”
재판부는 또 “이 사고는 A씨와 B씨가 함께 차도 안으로 들어가 강아지 사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보면, 사고 당시 A씨가 의사상자법상 구조행위를 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A씨가 차량 통행 제한을 위한 수신호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도 재판부는 지적했다. ‘2차 사고 예방을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강아지는 소형견으로 보이고, 사고 이후 차량 흐름이나 운행에 별다른 지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고 현장 도로 위에 쓰러져 있는 강아지의 모습. 사진 법무법인 엘앤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