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밀리고 美에 치이고…국내차도, 일본차도 운전대 틀었다

세키 준 폭스콘 전기차 최고전략책임자(CSO)가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전기차 전략 설명회를 열고 자사의 전기차 모델을 소개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세키 준 폭스콘 전기차 최고전략책임자(CSO)가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전기차 전략 설명회를 열고 자사의 전기차 모델을 소개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미쓰비시자동차가 호주로 운전대를 틀었다. 주요 판매처였던 동남아 시장에 중국 업체가 물밀듯이 들어오자 대체 시장 확보에 나선 것이다. 국내 완성차 기업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장벽을 피하기 위해 신흥국 시장 판매를 늘리고 있다.

지난 7일 미쓰비시자동차는 대만의 폭스콘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계약을 맺고 호주와 뉴질랜드에 폭스콘이 제조한 전기차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애플 아이폰의 위탁생산 기업으로 알려진 폭스콘은 2022년 대만의 자동차 제조사 위룽자동차와 합작해 전기차 업체 폭스트론을 설립했다. 미쓰비시는 폭스트론의 전기 해치백 ‘모델B’를 오세아니아 시장에 맞게 개량해 이듬해 하반기 출시할 예정이다.

폭스콘이 개발한 전기차가 지난해 대만에서 열린 폭스콘의 연례 기술 전시회 테크 데이에 전시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폭스콘이 개발한 전기차가 지난해 대만에서 열린 폭스콘의 연례 기술 전시회 테크 데이에 전시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북미와 동남아 지역에 집중했던 미쓰비시가 오세아니아 시장을 노리는 건 중국의 저가 전기차 공습을 피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중국 비야디(BYD)는 지난해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주요 6개국에서 전년 대비 62% 증가한 5만8376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같은 기간 토요타(6.6%)·혼다(10.9%)·스즈키(17.4%) 등 일본 업체 판매량이 일제히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아세안 최대 자동차 시장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해 4만4557대의 전기차가 판매됐는데, 가장 많이 팔린 모델 5개 중 3개가 중국 자동차 업체(BYD·체리)의 모델이었다. 

반면, 호주는 일본 차가 꽉 잡고 있는 시장이다. 지난해 호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 브랜드는 토요타(24만1296대)였고, 포드(10만170대)와 마쓰다(9만5987대)가 뒤를 이었다. 자동차 판매량 상위 10개 업체 중 5개를 일본 기업이 차지했다. 현대차(7만1664대)와 기아(8만1787대)는 각각 6위, 4위에 올랐고, 중국 업체는 10위 장성자동차(4만2782대) 1곳뿐이었다. 전체 시장 규모(124만대)는 한국(163만대)에 못 미치지만,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선호도가 높아 고가 차량 판매가 활발한 고수익 시장이다.

지난 1월 호주 빅토리아 주 멜버른 파크에서 열린 '2025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 공식 차량 전달식 모습. 사진 기아

지난 1월 호주 빅토리아 주 멜버른 파크에서 열린 '2025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 공식 차량 전달식 모습. 사진 기아

국내 자동차 업계도 호주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관세 타격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다른 시장에서 판매를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 3월 도널드 로마노 전 캐나다 판매법인장을 호주판매법인 첫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하고, CEO 직급을 상무에서 사장으로 높였다. 로마노 법인장은 지난해 캐나다에서 역대 최대 판매 실적(13만8755대)을 기록한 판매 전문가다. 현대차·기아는 최근 해외법인장들에게 올해 목표치 대비 10% 이상 더 판매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르노코리아는 중남미 시장을 노리고 있다. 르노코리아는 지난해 출시한 신형 SUV 그랑콜레오스를 중남미에 수출하기 위해 900대를 선적했다고 밝혔다. 중남미 시장은 산업 발전과 함께 자동차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다. 시장조사업체 모도르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남미 자동차 시장 규모는 올해 273억 달러(약 38조원)에서 2030년 412억 달러(약 57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중남미 최대 자동차 시장인 브라질에 생산거점을 마련하고 현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브라질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을 만나 2032년까지 11억 달러(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7일 경남 마산항에 중남미 수출용 그랑 콜레오스가 선적을 앞두고 자동차 터미널에 모여있는 모습. 사진 르노코리아

지난 7일 경남 마산항에 중남미 수출용 그랑 콜레오스가 선적을 앞두고 자동차 터미널에 모여있는 모습. 사진 르노코리아

문제는 수익성이다. 신흥국 시장은 성장 잠재력이 높지만, 저가 차량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아 수익성 확보가 어렵다. 이항구한국자동차연구원 자문위원은 “신흥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자동차는 연간 2500만대 수준으로 글로벌 판매량의 25~30%를 차지한다”라며 “국내 완성차 기업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지만, 수익성 확보가 어려운 곳인 만큼 현지 맞춤형 전략을 잘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