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MBK파트너스·영풍이 고려아연 공개매수 마지막 날인 4일 공개매수가를 이전 75만원에서 83만원으로 다시 올리면서다. 양측이 물러서지 않는 가격 경쟁에 돌입하면서 ‘쩐의 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영풍과 MBK는 이날 공개매수신고서 정정 공시를 내고 지난달 13일 시작한 고려아연 공개매수의 가격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같은 83만원으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당초 66만원으로 시작한 MBK·영풍의 고려아연 공개매수가는 75만원을 거쳐 83만까지 올랐다. 이에 따라 공개매수 대금도 기존 총 2조5140억원으로 늘었고, 청약 기간도 14일까지로 연장됐다.
MBK·영풍은 공개매수의 최소 매수 수량 조건을 없애고, 1주라도 들어오는 청약은 모두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당초에는 청약 수량이 발행주식의 최소 6.98%는 넘어야 매수하겠다고 했으나,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최소 수량 조건을 없애자 맞불을 놓았다. 모든 조건을 똑같이 맞춘 뒤 연장전을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고려아연의 기업 지배구조를 바로 세우고, 심각하게 훼손된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회복시키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날 오전부터 고려아연은 미국 사모펀드 운용사 베인캐피탈과 함께 자사주 최대 372만6591주(18%)에 대한 공개매수에 돌입하고, 최소 수량 조건을 삭제하는 초강수를 뒀다.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는 고려아연 주식 물량은 20% 초반대로, 대형 연기금 등을 제외한 투자자들은 보유 물량을 대부분 넘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공개매수 기간은 오는 23일까지다.
양측의 ‘쩐의 전쟁’이 갈수록 격화하면서 어느 쪽이 이기든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MBK·영풍의 공개매수 계획이 알려지기 전 50만원대이던 고려아연 주가는 70만원대 후반까지 오른 상태다. 이날 76만원선을 횡보하던 고려아연 주가는 MBK가 공개매수가를 83만원으로 올리자 전 거래일보다 8.8% 오른 77만6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마찬가지로 공개매수 경쟁이 불붙은 영풍정밀은 전 거래일보다 25% 이상 급등한 3만1850원의 종가를 기록했다.
MBK 측은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에 필요한 자금의 상당액을 차입금으로 충당했다며 공세를 폈다. MBK 측은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가 성공하면 순자산이 9조8000억원에서 7조1000억원으로 27% 감소하고, 부채비율은 36.5%에서 94.4%까지 오른다”며 회사와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 자금으로 1조5000억원의 회사 자기자금을 투입했고, 약1조2000억원의 차입금을 활용해 차입 비중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최근 5년간 고려아연의 연평균 에비타(EBITDA, 상각 전 영업이익)는 1조2000억원 수준으로, 부채 상환할 만한 현금 창출력은 이미 충분하다”며 “차입금과 부채비율에 대한 MBK측의 비판은 당사의 현금 창출력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MBK·영풍은 이날부터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한 영풍정밀 공개매수가도 기존 2만5000원에서 3만원으로 상향하고 공개매수 기간을 오는 14일까지로 늘렸다. 고려아연이 지난 2일부터 같은 가격에 영풍정밀 지분 공개매수를 개시한 데 따른 것이다. 영풍정밀은 고려아연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가가 낮은 데다가, 기관투자자 비중이 작은 편이어서 양측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최윤범 회장 측은 오는 7일 영풍정밀 공개매수를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제리코파트너스 이사회를 열어 영풍정밀의 공개매수가 인상과 인수 수량 확대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