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속 영웅의 칼보다 더 힘이 센 것은
오랜 옛날, 이란 왕국은 훌륭한 왕 잠시드의 통치 아래 번영을 누렸어요. 모든 인간의 조상이자 최초의 왕인 케유마르스의 후예인 잠시드왕은 긴 세월 이란을 다스리며 온갖 위대한 일을 행합니다. 신분을 정하고 봄을 기리는 축제를 시작했으며 물에 배를 띄우고 철제 무기로 무장한 군대로 외적을 막아냈죠. 그에게는 ‘잠의 술잔’이라 불리는 놀라운 보물이 있었는데 세상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이 보물의 힘으로 잠시드는 페르세폴리스의 옥좌에 앉아 나라 전체를 올바르게 다스렸죠. 하지만 모든 것이 영원할 수는 없는 법. 잠시드의 치세가 700년에 이르면서 그는 점차 자만하기 시작해요. “세상의 온갖 위대한 일은 모두 내가 한 것이다. 그러니 나를 창조주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실망하고 떠나갔어요.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잠시드가 후회하며 사과했지만, 한번 떠난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죠.
그 무렵 이웃 아랍에 자하크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악신 아리만의 저주로 거대한 두 마리 뱀을 어깨에 지닌 그는 뱀왕이라고 불렸죠. 두 마리 뱀은 매일 사람의 뇌를 먹었기에 사람들은 뱀왕을 두려워하며 따랐습니다. 뱀왕 자하크가 이란을 침공했을 때 잠시드에게 실망한 이란 사람들은 뱀왕의 사악함을 알지 못하고 그를 도왔죠. 홀로 남은 잠시드는 동쪽으로 도망쳤지만, 결국 뱀왕의 군대에 잡혀 죽고 맙니다. 그렇게 뱀왕 자하크의 통치가 시작됐어요.
탐욕스러운 자하크의 지배로 사람들은 고통받았습니다. 매일 두 명의 젊은이가 뱀에게 제물로 바쳐지고 많은 이가 강제 노동과 수탈에 시달렸죠. 반항하는 사람들은 강대한 자하크의 군대에 짓밟혔어요. 그러던 어느날 자하크는 꿈을 꿉니다. 세 명의 용자가 쳐들어와 그를 물리치는 꿈이었죠. 놀란 왕은 사람들을 모아 물었습니다. 오랜 침묵 끝에 한 사제가 대답했죠. “페레이둔이라는 젊은이가 왕을 물리칠 것입니다.” 뱀왕은 그 젊은이를 찾아 죽이도록 했지만, 이미 도망친 뒤였죠. 분노한 뱀왕은 젊은이를 보호하고 보살폈던 신성한 소 비르마야와 수많은 이를 학살했습니다.
한편, 어머니의 도움으로 도망친 페레이둔은 한 현자의 보호 아래 용감하게 자라났어요. 페레이둔은 뱀왕과 싸우고자 했지만, 현명한 어머니는 때를 기다리라고 했죠. 그 무렵 예언을 두려워한 뱀왕은 악마와 인간을 모은 혼성군단을 만들며 온 나라의 백성에게 자신을 공정한 왕이라 부르며 충성을 맹세하게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떨며 맹세할 때 한 노인이 나섰죠. 자하크의 뱀에 의해 거의 모든 아들을 잃은 그는 맹세하는 척하다가 외칩니다. “나는 결코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겠다. 잔인한 악마를 두고 공정한 왕이라고 하지 않겠다.” 노인은 마지막 남은 아들과 함께 시장으로 달려가 왕을 타도하자고 외쳤죠. 그의 손에는 그가 신성한 일터에서 사용하던 가죽 앞치마가 깃발처럼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연약하고 평범한 노인의 외침, 그 목소리에 깃든 용기는 폭정에 굴복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했어요.
수많은 이가 노인이 세운 깃발 아래 모여들어 행진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예언의 왕자 페레이둔이 기다리던 기회였죠. 무기를 손에 들고 일어선 그는 군중과 함께 예루살렘에 있는 자하크의 성으로 향합니다. 뱀왕을 두려워한 사공의 방해를 무시하고 용맹하게 강을 건넌 페레이둔은 신이 내린 사도의 도움으로 성의 마법을 깨뜨리고 성을 지키던 악마와 마법사를 물리치죠. 마법의 나라 인도에 갔던 뱀왕이 돌아왔을 때 그의 왕국은 이미 함락된 뒤였습니다. 복수심에 불탄 뱀왕은 악마의 혼성군대를 이끌고 공격했지만, 이란의 민중이 돌을 던지며 저항했죠. 마지막 시도로 뱀왕은 마법으로 왕궁에 잠입하지만, 결국 페레이둔에게 사로잡힙니다. 뱀왕을 죽이려던 페레이둔은 ‘아직 그가 죽을 때가 아니다’라는 신의 뜻에 따라 그를 다마반드산 깊은 동굴에 가두죠.
뱀왕을 물리친 예언의 왕자, 페레이둔이 왕위에 오른 날은 태양과 진리, 서약의 신 미트라(메흐르)를 기리는 메흐르(Mehr)의 달 초하루였습니다. 뱀왕을 물리치기 위한 페레이둔과 사람들의 맹세가 실천된 날을 기리며 축제를 열렸죠. 가을을 맞이하여 온갖 곡식과 과일이 넘쳐나는 시기, 사람들은 폭정에 맞선 용기를 기리고 앞으로 풍요가 계속되길 기원하며 축제를 즐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란의 두 번째로 큰 축제였던(이슬람교의 전통 아래 거의 사라진) 메레건입니다. 이란력으로 7월 16~17일, 양력으로는 10월 초순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이란에서는 풍요로운 가을의 양식을 즐기며 그 의미를 되새긴다고 하죠.
가을의 풍요를 기린다는 점에서 한국의 추석과도 같은 축제. 여기엔 신에 대한 감사만이 아니라 사악한 왕의 폭정에 용감하게 맞선 이란 민중의 자부심이 함께 담겼습니다. 예언의 영웅조차 쉽게 일어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 노인이 보여준 용기, 자기 일에 자부심을 지니고 낡은 앞치마를 당당하게 깃발로 내세운 평범한 민중 이야기가 서려 있는 것이죠. 전설에 따르면 노인을 맞이한 페레이둔은 그 앞치마를 황금과 보석, 비단으로 장식하고 군대의 앞에 당당하게 내걸었다고 합니다. 노인의 이름을 따 카베의 깃발이라 불리며 용기의 상징으로 기억되죠. 진정한 영웅은 예언의 왕자가 아니라 평범한 한 사람의 용기라는 사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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