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첫 아이를 출산한 직장인 배모(31)씨는 최근 아이를 더 가지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 아이를 워낙 좋아해 둘은 낳아야겠다 생각했는데, 최근 다자녀 가구에 대한 주택 공급 혜택 등을 접하면서 셋째까지 고민하게 됐다. 배씨는 “서울에 집 사기가 워낙 어려우니 ‘셋째까지 낳아 다자녀 특별공급을 받는 건 어떨까’ 싶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직장에서 눈치가 보여 육아휴직 등의 제도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걸림돌"이라고 덧붙였다.
3년 전 결혼한 은행원 전모(34)씨 부부는 임신을 미뤄오다 올해 초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다. 부부는 3개월 여 노력 끝에 지난 4월 임신에 성공했다. 전씨는 "언젠가 여건이 되면 아이를 갖자 생각했는데, 신생아 특례 대출이 생겨 기왕이면 지금 낳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배씨와 전씨처럼 결혼과 출산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국민이 6개월 전보다 증가했다는 인식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혼 남녀의 결혼 의향이 소폭 증가하고, ‘자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이런 내용의 ‘결혼·출산·양육 및 정부 저출생 대책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저고위는 국민 인식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3월 실시한 조사와 문항을 동일하게 구성한 설문조사를 지난 8월 31일~9월 7일, 전국 성인(만 25~49세) 2592명을 대상으로 다시 실시했다.
조사 결과, 결혼 자체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6개월 전 70.9%에서 이번 조사에서 71.5%로 소폭 증가했다. 결혼할 의향이 있다는 미혼남녀의 응답도 3월 조사 대비 4.4%p(61%→65.4%) 증가했다. 특히 30대 여성은 지난 3월 조사에선 결혼 의향이 48.4%에 불과했으나, 이번 조사에선 60%로 11.6%p 상승했다. 자녀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비율도 61.1%에서 68.2%로 7.1%p 증가했다. 특히 만 25~29세 여성의 긍정적 인식이 34.4%에서 48.1%로 크게 늘었다.
자녀가 없는 이들 중 출산 의향이 있다는 응답 역시 증가했다. 출산 의향을 묻는 문항에 대해 3월 조사에서 ‘낳을 생각이 있다’는 응답을 택한 비율은 32.6%였으나 이번에는 37.7%로 5.1%p 증가했다. 기혼이면서 아직 자녀가 없는 집단에서 출산할 의향이 8.3%p(42.4%→50.7%) 증가했다. 반면, 자녀가 있는 남녀 중에서는 출산 의향이 3월 대비 소폭(10.1%→9.3%) 감소했다. 아이를 추가로 낳을 의향이 없거나, 아직 결정하지 못한 이유로는 ‘자녀 양육비용 부담’(46.1%)과 ‘자녀 양육이 어렵게 느껴져서’(40.7%)라는 응답이 가장 많이 꼽혔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녀 수는 1.8명으로 지난 3월 조사와 동일했다. 이에 대해 저고위는 “임신·출산·양육에 어려운 요소를 지원하고, 긍정적인 환경을 만든다면 저출생 추세 반전이 가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에 대한 인식을 묻는 문항 등 정책 수요를 알아보기 위한 질문도 포함됐다. 응답자의 64.6%가 정부 대책을 ‘들어봤다’거나 ‘내용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했다. 세부 과제별로는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육아지원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중요하다고 꼽은 응답자가 88.1%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필요할 때 휴가·휴직 사용’과 ‘소득 걱정 없이 휴가·휴직 사용’이 각각 87.5% 응답률을 얻어 중요도가 높게 인식된 상위 3개 과제가 모두 일·가정 양립 관련으로 나타났다.
향후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확대·강화해야 할 정책에 대해서도 ‘엄마·아빠의 육아기 유연근무 사용 활성화’를 84.4%가 선택해 응답률이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 많이 꼽힌 정책은 ‘소아 의료서비스 이용 편의성 제고’(83%)였고, ‘긴급 이용자를 위한 돌봄기관 서비스 확대’(81.3%), ‘임산부 근로시간 단축 추가 확대’(80.8%) 등이 뒤를 이었다.
이런 인식조사 결과가 정부 정책 효과 덕분이라고 해석하기는 이르다는 전문가 목소리도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대한 국민 인식이 어느 정도 확산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다만 (동일한 표본을 추적하는) 패널조사가 아니기에 이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저출생이라는 큰 흐름이 반전을 기대하려면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인식조사는 어떤 사람들이 조사 대상이 됐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최근 혼인 건수 증가 추세도 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인구보다 90년대생이 더 많은 영향일 수 있다 ”며 “정책 효과를 보려면 합계출산율이 변화하는지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