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자성어는 농교성졸(弄巧成拙. 희롱할 롱, 공교로울 교, 이룰 성, 졸할 졸)이다. 앞의 두 글자 ‘농교’는 ‘기교를 부리다’라는 뜻이다. 뒤의 두 글자 ‘성졸’은 ‘졸렬하게 되다’라는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솜씨를 과하게 부리다가 오히려 엉터리 결과를 초래하다’라는 의미가 만들어졌다. 북송의 유명한 화가 손지미(孫知微)와 관련된 일화에 이 ‘농교성졸’이 등장한다.
화가 손지미는 쓰촨(四川)성 메이저우(眉州)에서 태어났다. 고향 부근에 은거하며 평생 창작 활동에 힘썼다. 그는 젊은 시절 한 승려 화가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그래서인지 불교나 도교 관련 그림을 그릴 때엔 목욕재계를 거르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해 높은 벼슬아치가 초청해도 병을 핑계로 응하지 않았다. 그는 회화에서 과거 기법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휘종 시대에 만들어진 총 20권 분량의 회화통사(繪畵通史) 서적 선화화보(宣和畵譜)에도 그의 작품이 다수 실려있다.
손지미가 청두(成都) 수이닝(壽寧)사 주지 스님 부탁으로 커다란 ‘구요성군도(九曜星君圖)’를 그리던 무렵의 일화다. 일월화수목금토에 2신(神)이 추가된 ‘구요성군’은 인도 불교의 영향을 받아 중국 민간신앙에서 널리 숭배하던 아홉 신이다. 손지미가 윤곽선을 완성했고, 채색할 물감도 만들었고, ‘이제 윤곽선 안에 색칠만 하면 완성되겠구나’ 생각하던 참에, 한 친구가 찾아왔다. 그는 작업을 중단하고 나가서 술을 마셔야 할 타이밍이라고 손지미에게 권했다.
손지미도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라 손에서 붓을 내려놓고 곁의 제자들에게 말한다. “이 그림은 기본 윤곽선이 이미 다 그려진 상태다. 여기 이 물감으로 착색할 일만 남았다. 이 정도라면 너희들이 마무리해도 무방할 것 같다. 난 이 친구와 나갔다가 돌아오겠다.”
스승이 자리를 비우자 제자들은 당연히 긴장이 풀렸다. 채색은 않고 우선 눈앞의 미완성 ‘구요성군도’에 대한 솔직한 느낌들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제자 가운데 동인익(童仁益)이란 이름을 가진 괴짜가 하나 있었다. 그는 잔꾀가 많고 무슨 일에서나 나서서 발언하길 좋아했다. 그런데 그가 이번에는 그림의 한 부분을 계속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없었다. “동인익, 꽤 심각한 표정이네. 그림에서 무슨 문제라도 발견한 거야?”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른 제자가 물었다.
동인익이 대답한다. “스승께서 물병을 그릴 때면 항상 꽃 한 송이를 함께 그리셨는데 이번엔 꽃이 보이질 않아. 아마도 급히 나가시느라 물병에 꽂힌 꽃을 망각하신 것 같아. 그냥 우리가 꽃을 추가하자.” 함께 있던 제자들은 반신반의하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에 따랐다가 낭패를 본 경험들 때문이었다. 미처 의논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붉은 연꽃 한 송이를 물병 위에 그려 넣었다.
채색이 끝날 무렵, 손지미가 돌아왔다. 그림을 점검하던 그가 물병 위의 연꽃을 발견하고는 크게 탄식하며 말한다. “대체 누가 여기에 바보짓을 한 거냐. 만약 오류가 화사첨족(畵蛇添足)이라면 그냥 한바탕 웃고 끝내도 될 일이겠지만, 이건 ‘농교성졸’이 아니냐. 꽃 한 송이가 아예 전체 그림을 망가뜨렸구나.” 말을 마치고 그는 그림 전체를 파기하라고 지시한다. 본래 ‘구요성군도’에서 물의 신을 보좌하는 동자가 쥔 물병은 물의 요괴를 제압하는 진요병(鎭妖甁)이었다. 여기에 꽃이 추가되어, 장식용 꽃병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소총명(小聰明)’. ‘잔머리를 굴리거나 잔재주에 능하다’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동인익과 같은 인물을 평가할 때 자주 쓰는 3글자다. 살면서 마지막 한 마디 추가했다가 ‘아차!’ 하는 순간을 누구나 경험한다. 그 직전에 멈출 줄 아는 이가 진짜 거인이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