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일본 도치기 현의 히가시노미야 골프장 황진국(51, 미국이름 짐황) 총지배인은 영업을 위해 광고 전단을 돌리고 연습장을 찾아 다녔다. 술집 마마상에게 부탁도 해야 했다.
과거 항공권을 예약하려면 여행사나 탑항공 같은 항공티켓 판매사에 전화를 해야 했다. 요즘엔 마우스 몇 번 눌러 가격비교도 하고 연결편 포함, 전세계 항공권을 예약할 수 있다. 호텔도 렌터카도 마찬가지다.
골프는 그렇지 못했는데 최근 구글맵과 검색에 ‘온라인 예약’ 기능이 생겼다. 골프 부킹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개발한 주인공은 한국회사 AGL이다. 구글 골프 예약서비스 파트너로 참가하고 있다.
황진국 AGL 대표는 고교시절 미국으로 어학연수갔을 때 골프코스 옆에 있는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자연을 좋아했기 때문에 골프 코스에서 일하는 게 멋질 거라 생각했다. 성균관대 졸업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골프코스 매니지먼트 부문 특성화 학교인 오리-조지타운 대학에 다녔다.
골프장 관리 회사인 트룬에 코스 관리자로 입사해 매니저가 됐고 애리조나 주 8개 골프장을 관리하는 지역 책임자가 됐다. 이후 트룬 일본 지사로 파견 가 도쿄와 도치기, 미야자키 등에서 골프장 인수합병, 운영, 관리를 했다. 한국 스카이72(현 클럽72) 골프장 개장을 돕고 안양CC 컨설팅도 했다. 골프존 카운티 전신인 듄즈골프와 IMG 골프코스 매니지먼트 한국 대표 등도 거쳤다.
그는 일본에서 일할 때 ‘마마상’을 찾아가는 등의 영업방식이 탐탁치 않았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머틀비치 소재 대학 재학 시절 애틀랜타까지 가는 비행기가 거의 만원이었다. 골프장은 빈자리가 많은데 왜 비행기는 꽉 찰까 궁금했다.
항공사가 비행기를 채우는 비결은 GDS(Global Distribution System, 글로벌 유통 시스템)였다. GDS는 개별 전산 시스템을 썼던 유럽 항공사들이 소스를 공개해 여러 채널에서 자유롭게 예약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가격을 비교하고 예약하고 결제하게 만든 것이다.
머틀비치의 비행기 티켓을 한 항공사나 여행사가 독점하는 것보다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하면 보다 수월하게 팔 수 있는 이치다. 호텔과 렌터카에서도 이런 시스템을 쓴다.
황 대표는 한국과 미국, 일본 골프 업계에서 일해 봤다. 나라별로 예약 시스템이 확연히 다른 걸 알기 때문에 그 중 어느 것도 절대적인 건 아니고, 결국 글로벌 시스템으로 갈 것으로 믿었다.
골프에도 예약 플랫폼이 많다. 그러나 GDS 시스템은 아니다. 황대표는 “GDS는 전세계 모든 국가를 위한 멀티, 오픈 플랫폼이다. 일반 예약 플랫폼은 골프장이 시스템을 열어주지는 않고 일부 티타임을 나눠 줘 소매판매상으로 두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황 대표는 골프에서도 소스를 완전 공개하는 실시간, 멀티채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19년 AGL을 창업했다.
타이거 GDS를 개발한 직후 코로나19가 터졌다. 코로나 호황을 맞은 국내 골프장은 타이거 GDS에 관심이 없었다. 반면 외국인 손님을 받지 못해 어려워진 동남아 골프장들은 조금씩 움직였다. 황 대표는 “GDS 시스템을 연결시키려 동남아를 떠도느라 코로나에 6번 확진됐다. 각국 변종 코로나를 다 겪었다”고 했다. AGL은 지금까지 국내 4대 금융그룹에서 300억원 등 총 450억원을 투자 받았다.
구글은 여행으로 생기는 트래픽을 이용한 광고 매출이 연 30조원이다. 골프장 예약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미국엔 골프 GDS 시스템이 없다. 구글은 한국의 스타트업인 AGL의 시스템을 1년 6개월 테스트한 후 지난 7월 도입해 골프장 예약 시스템(Reserve with Google)을 론칭했다. 미국의 매머드 골프 예약 플랫폼인 골프 나우 등도 GDS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항공과 호텔, 렌터카 산업은 GDS 도입 후 크게 성장했다. 국제항공운송 협회 등에 의하면 2022년 기준 항공시장은 연 715조원, 호텔은 936조원이다. 국내 항공 시장은 2014년 GDS 도입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시장동향 등에 의하면 2014년 GDS 도입 후 4년 만에 승객 2900만명이 늘었다. 이전 2900만명이 늘어나는데는 10년이 걸렸다.
황진국 대표는 “전세계 골프 그린피 시장 규모는 114조원이다. 그러나 티타임 중 실제 팔리는 건 23%에 불과하다. 100%를 다 팔 수 있다면 504조에 이를 것이다. GDS로 정보 비대칭을 해소한다면 공급이 느는 효과가 생겨 소비자는 더 싸게 골프장을 이용하고 골프장은 돈 들이지 않고 글로벌 마케팅 홍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또한 “타이거 GDS는 구글 서비스 론칭 이후 트래픽이 4000% 늘었으며 외국인 골퍼 이용 비율이 84%다. 우리 시스템으로 미국인이 영국 골프장을 예약하고, 대만인이 베트남, 태국 골프장에 간다”고 말했다.
넘어야 할 벽은 아직 남았다. 골프에 GDS 시스템이 뒤늦게 나온 이유가 있다. 폐쇄적인 회원제 골프장은 티타임 소스를 공개하지 않는다. 한국처럼 손님이 꽉 차는 공급자 위주의 시장에서도 굳이 이런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없었다. 일본은 변화에 적극적이지 않다. 아직도 수기로 장부를 적는 곳도 있다.
AGL이 계약한 골프장은 전세계 2100개다. 시스템 연결 작업이 끝나 AGL의 타이거 부킹(www.tigerbooking.golf)으로 예약할 수 있는 곳이 1500개 정도다. 구글로 예약 가능한 건 780개로 전세계 골프장(약 3만8400개)의 2% 정도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특히 국내에서 취약하다.
황 대표는 “한국 시장이 가장 어렵다. 동남아와 일본을 통해 아시아 1등을 확고히 한 후 유럽, 미국 진출을 꾀하고 있다. 결국 한국 골프장들도 결국 세계적인 트렌드를 따를 것으로 본다. 요즘 여건이 좋지 않은 제주도의 골프장은 구글 예약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고 했다.
AGL에게 구글이 전부는 아닌 듯 하다. 타이거 GDS는 제주항공과 연결됐다. 제주항공 사이트에서 타이거 GDS 시스템을 활용해 도착지 골프장을 실시간 예약한다. 황 대표는 “항공과 골프장이라는 이종 GDS가 연결된 첫 사례다. 독일 루프트한자에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활용 폭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