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048명 아이들 다잉메시지…연 150명 ‘숨은 학대’에 숨졌다

3048명 아이들의 다잉메시지
‘정인이법’ ‘민식이법’…. 학대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이의 이름을 딴 법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일사천리로 없는 법까지 만들지만 대부분 아동은 왜, 어떻게 사망했는지 검토하지 않은 채 사망 처리된다. 반면에 미국·영국·일본은 일찍 아동사망검토제(CDR)를 도입해 재발을 막을 예방책을 찾는다. 중앙일보는 국과수가 최근 10년간 부검으로 확인한 3048명의 아이들이 남긴 ‘다잉메시지’를 통해 어른들이 관심과 주의를 조금 더 기울였다면 막을 수 있는 죽음이 많다는 사실을 심층 취재했다.
일러스트=김지윤 기자

일러스트=김지윤 기자

생후 83일 찬민이의 죽음

지난 9월 15일 오후 12시쯤 인천 미추홀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내용의 119 신고가 들어왔다.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은 숨을 멈추고 경직된 상태의 구찬민(가명·남)군을 발견했다. 생후 83일 된 아기였다. 아이의 친부 구상학(가명·30대)씨는 “자고 일어나보니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인천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계는 곧바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맡겼다. 친부와 친모 이사라(가명·20대)씨에 대한 조사도 착수했다. 두 사람은 이미 50일 전 찬민이를 떨어뜨려 머리뼈 골절로 아동학대 수사를 받던 중이었으나 “실수로 떨어뜨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찬민이 사망 당시 좁은 오피스텔에서 이씨 친구인 A씨 가족 3명(여아 2명 포함)과 B씨 가족 5명(여아 3명 포함)이 함께 생활하는 특이한 상황이었다. 친모 이씨는 지난해 11월 생후 89일이던 한살 터울 형 찬근(가명)이의 무릎 골절로 불구속 송치된 상태였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부검 결과 찬민이의 사인은 원인불명으로 나왔다. 이후 정밀 부검에선 허혈성 뇌 손상(뇌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생기는 현상)이 의심되지만 앞서 머리 골절 때문인지, 질식 때문인지 가리지 못했다. 아동학대 사망으로 볼 직접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경찰은 전문의 소견 등을 추가 조사한 뒤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할지 고심하고 있다.

죽어서야 드러난 아동보호체계 빈틈 

찬민이가 비극을 피할 수 있었던 기회는 있었다. 지난 7월 낙상 사고 당시 미추홀구청은 구씨 부부의 아동학대 신고 이력을 인지했다. 하지만 구청은 당시 A군을 부모와 분리할 수 없었다. 아동복지법 제15조는 연 2회 이상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된 ‘아동’에 대해서만 즉각 분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찬근·찬민이에겐 각 1회씩 신고가 접수됐을 뿐이었다. 법의 빈틈 탓에 아동보호의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찬민이의 죽음을 계기로 ‘아동’이 아닌 ‘가정 등’에 2회 신고가 들어와도 즉각 분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검토 중이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구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구씨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찬민이의 머리뼈 골절에 대해선 “낙상 사고는 (출산 후) 회복이 덜 된 아내가 손을 놓쳐서 떨어뜨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머리를 다친 뒤 똑바로 눕히면 아이가 잠을 잘 못 자서 목 가누기를 잘하던 시기에 다친 반대쪽으로 옆으로 돌려 뉜 것”이라며 “사망 당시 아이의 비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찬근이의 무릎 골절에 대해선 “기르던 고양이 발에 진득거리는 물체가 묻었다”며 “고양이가 발버둥을 치다가 높은 곳에서 찬근의 무릎으로 착지해 사고가 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양경무 서울과학수사연구소장은 “찬민이 사례처럼 아동 사망은 결정적 증거가 있는 경우가 드물어 사인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 학대당했다는 심증이 있어도 부검 감정서는 보수적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과수 아동사망검토연구에 참여한 양경무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장은 1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동학대 사망은 결정적 증거가 있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국과수 아동사망검토연구에 참여한 양경무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장은 1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동학대 사망은 결정적 증거가 있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3048명, 아이들이 남긴 다잉메시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아동사망검토시스템(NFS-Child Death Review System)을 통해 2015~2021년 7년간 부검한 아동 사망 사건 2239건을 분석한 결과 절반을 넘는 1147건이 학대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보건복지부 통계(243건)보다 숨겨진 학대 사망 사건이 최대 4.7배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공식 통계는 수사기관에서 학대치사로 결론이 난 사건 위주로 집계하기 때문이다. 2021년 경우 복지부 공식 통계는 40명이지만 국과수는 150명 많은 190명으로 추정하는 등 매년 100~150명 숨은 학대 사망 아동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NFS-CDRS는 2015년 이후 수사기록과 부검보고서 등 만 18세 미만 아동 3048명의 사망 자료를 ‘머신러닝’을 통해 학습시켜 개발한 아동사망의 위험성을 판단하는 시스템이다. 아동학대 사망의 경우 ▶아동고문▶부친·모친에 의한 살해 ▶신생아 살해 ▶방임에 의한 살해 ▶정신병적 살해 등 8개 유형으로 세분한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국과수가 설정한 340개 변수(사망 당시 아동과 부모 나이, 사회적 지지 정도, 양육 환경, 부모 소득, 폭력 등 가정불화, 부모 정신병력 등)가 입력돼 있다. 김희송 법의검사과실장은 “아동에 대한 혹독한 대우(maltreatment)’까지 판단 기준으로 두면 신체 학대뿐 아니라 방임·부주의 등 어른의 의무를 간과해 사망한 경우까지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21년 한 광역지자체의 원룸에서 숨진 생후 6개월 주영이도 공식 통계에선 학대로 잡히진 않았지만, 국과수는 학대 사망으로 추정한 사례다. 당시 성인용 침대에서 얼굴까지 이불에 덮인 채 발견됐다. 친부모가 키우던 강아지와 고양이 여러 마리의 분변이 집안 가득한 환경이었으나 신체 학대 흔적은 없었다. 사인 역시 ‘원인 불명’으로 나왔다. 결국 주영이는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자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일러스트=김지윤 기자

일러스트=김지윤 기자

 
같은 해 생후 2개월에 얼굴에 베개가 떨어진 채 숨진 채 발견된 김세은(가명)양도 마찬가지다. 알코올 중독이던 20대 미혼모 친모는 세은이가 죽기 전날도 술에 취한 채 잠들었다고 한다. 경찰은 세은이 몸에 외상이 없는 등 학대 혐의를 확인할 수 없다며 내사 종결했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 사망과 관련 학대 혐의로 신고된 42명 중 14명(38.1%)은 입건 전 조사종결, 불송치, 불기소 판단을 받았다.

김 실장은 “처벌 관점에서 아동 사망을 들여다보면 놓치는 아이의 죽음이 너무 많다”며 “가정에서 은밀하게 발생하는 아동학대는 숨겨진 죽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선욱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는 정확한 예방책을 마련하기 위해 아동이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 싣는 순서
1화 - 아이들의 ‘숨은 죽음’  
2화 - 죽음 막는 아동학대 프로파일링
3화 - 우연한 아동 사고사는 없다
4화 - 아동사망검토, 해외는 어떻게?

※아래 링크에서 시리즈 기사를 읽어보세요.      
https://www.joongang.co.kr/series/11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