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탄핵' 10일까지 미뤘지만 어쨌든 '예산 파행'…정부, 속수무책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국회 통과가 결국 뒤로 미뤄졌다. 예산 편성 차질도 불가피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증액 없이 감액(-4조1000억원)만 반영한 내년도 예산안을 2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았다. 대신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까지 여야가 합의해 예산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우 의장은 “다수당은 다수당으로서, 여당은 집권당으로서 예산안 합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요청한다”며 “정부도 자성하고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주재한 정부 입장 합동 브리핑에서 “대외 불확실성으로 엄중한 상황에서 리스크(위험)가 가중하고 있다”며 “야당은 지금이라도 단독 감액안을 철회하고 협상해 달라”고 말했다.

우 의장의 중재는 헌정 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안 통과라는 파국을 잠시 미룬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감액 예산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증액 협상도 할 수 없다”는 당·정과 “정부가 증액 수정안을 내면 협의하겠다”는 야당 입장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어서다. 다만 야당이 감액안을 ‘지렛대’ 삼아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2조원) 증액을 관철하기 위한 협상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뒷모습)과 면담하고 있다. 뉴스1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뒷모습)과 면담하고 있다. 뉴스1

 
2014년 국회선진화법을 시행한 뒤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지킨 건 두 번(2014·2020년)뿐이다. 올해도 지각 편성은 불가피하다. 국회가 12월 초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정부가 내년 회계연도를 개시하는 1월 1일부터 예산을 빠르게 집행할 수 있다. 국회 통과가 늦어질수록 취약계층 일자리,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등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 의무지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지방자치단체 예산 심의도 밀린다. 내수(국내 소비) 부진을 타개할 직접 수단이 발목 잡힌다는 뜻이다.

10일로 잡힌 ‘데드라인’까지 여야 합의가 불발될 경우 문제가 더 커진다. 야당이 감액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예비비(2조4000억원 감액)다. 예비비는 재난뿐 아니라 비상시에 쓰도록 편성한 예산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긴급한 산업·통상 분야 대응에도 쓸 수 있다. 2019년 일본이 수출을 규제할 당시에도 예비비를 썼다. 기재부는 감액 예산안에 국가전략기술 세제 지원 확대, 소상공인 부담 경감, 내수 활성화 방안이 빠진 데다 청년·아이돌봄·의료개혁과 마약 등 범죄 대응 예산이 줄어든 점도 우려하고 있다.


정부로선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다. 예산안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대상도 아니다. 부처 내 우선순위가 낮은 사업의 예산을 조정해 재배정하는 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예산안이 12월 31일까지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준(準)예산을 편성할 가능성도 있다. 헌법 54조 3항은 예산을 전년에 준(準)해 편성하는 준예산 집행 대상을 ▶국가 기관의 유지 및 운영 ▶법률상 지출 의무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한 사업의 계속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 운영을 위해 최소한 지출만 허용하고, 재량 지출을 통제한다는 원칙만 있다. 구체적인 집행 대상과 요건 등 세부 가이드라인이 없어 혼란이 불가피하다. 실제 준예산을 실행한 전례도 없어 법적 논란이 불가피하다.

감액 예산안이 통과될 경우 내년 초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피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감액 예산안 통과 시) 전용(轉用. 주요 분야 예산을 서로 융통해 사용하는 것)할 수 있는 예산부터 검토해야 한다”면서도 “건전 재정 기조인 데다 전용하더라도 법이 정한 요건을 맞춰야 해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야당 주장대로) 필요할 때마다 추경을 편성한다면 정부 지출을 미리 계획하는 ‘예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