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했다 국회의 의결로 계엄을 해제한 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이날 거래를 시작한 코스피,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6시간 계엄령’ 사태로 한국 산업계는 밤새 환율과 증시, 해외 고객 반응을 걱정하다가 뜬 눈으로 4일 아침을 맞았다. 글로벌 경기 불황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 시대 불확정성이라는 외부 요인에 이어, ‘비상계엄 소동’이라는 한국 스스로 만든 셀프 악재까지 겹쳤다.
산업계에 따르면, 지난밤 비상계엄 소동으로 국내 주요 대기업 임원들은 모두 밤을 새운 뒤 곧바로 출근했다. 일부 기업에선 임원들이 한밤에 출근해 국내외 영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정부·국회 대응을 담당하는 대관 부서 임직원들은 밤새 여야 보좌관 등에 연락하며 국회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데 전력했다고 한다.
계엄은 종료됐지만, 환율 급등으로 인한 기업 재무 리스크는 남았다. 4일 오전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국내외 상황이 긴박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각사 사장들은 비상경영상황에 준하는 인식을 가져야 하며, 특히 환율 등 재무리스크를 집중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SK그룹도 4일 오전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관으로 주요 경영진 참석하는 대책 회의를 소집하고, 시장 및 그룹에 미칠 영향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계엄 스케치 르포 대전역, 대전시청역. 2024년 12월 4일 오전 8시. 사진 신진호 기자
증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를 넘어 ‘코리아 디스트럭트(destruct, 파괴)’ 우려까지 나온다. 경영 환경 악화와 부진한 실적으로 이미 국내 대기업과 지주사 주가가 내려갈대로 내려간 상황에서 갑작스런 계엄 악재까지 닥치자, 대기업에서는 ‘차라리 증시를 하루 쉬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푸념까지 나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기업들이 주주환원과 밸류 업에 고심하는 가운데, 해외 투자자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예측불가’의 상황이 실제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 한국 지사장들은 지난 밤 이후 본사로부터 ‘한국 상황이 어떤가’ ‘이상 없는 건가'라는 연락을 받고 있다.
해외 증시에 상장한 우리 기업 주가는 이미 타격을 입었다. 뉴욕 증시에 상장한 쿠팡 주가는 계엄 선포 후 한때 9.8%까지 하락했다가 국회가 계엄해제 결의안을 가결한 뒤 조금 회복돼 -3.74%로 거래를 마쳤다.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형태로 뉴욕증시에 상장한 포스코홀딩스(-4.36%), KB금융(-1.6%), SK텔레콤(-1.63%) 등도 하락을 면치 못했다. 국내 증시는 개장 직후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등 2~3%씩 하락했다가 10시 현재 보합세다.
안전 우려도 있다. 24시간 생산이 가동되며 라인이 멈출 시 피해가 큰 반도체 업계도 야간 조업 상황을 지켜보며 긴장의 밤을 보냈다. 사옥이 여의도에 있는 LG전자는 혹시라도 있을 집회나 소요를 우려해 여의도 트윈타워 근무자들에게 4일 재택 근무를 권고했고, 최소 인원만 여의도로 출근해 일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 고대역폭메모리(HBM)·장비 수출 추가 제재 등으로 글로벌 정세가 급박한 반도체 산업은 또 다른 장애물을 만났다. 지난 2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대중 수출 제재로 타격을 입은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오늘 산업통상자원부와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취소됐다. 우리 기업 수출 등 산업에 미칠 영향과 업계의 상황을 공유하고 정부 차원의 대응도 논의하려 했으나 지난 밤의 계엄 소동으로 이 일정도 무한 연기됐다.
국내 반도체산업 지원 방안 등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은 당초 목표였던 지난달 본회의 처리가 불발돼 이달로 다시 목표 일정을 잡았지만, 계엄 소동 직후 이마저도 불투명해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잠정적으로 일정을 잡았으나, 이제는 국회 상황을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