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투자‧고용 계획 올스톱, ‘시계제로’ 우려…“불확실성 장기화가 최악”

국회 표결을 앞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바라보는 재계엔 긴장감이 돈다. 앞서 2004년과 2016년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 정국을 겪으면서 얻은 학습효과로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이전과는 대내외 경제 상황이 달라 걱정이 크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 5당 대표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4일 오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사퇴촉구 탄핵추진 비상시국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 5당 대표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4일 오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사퇴촉구 탄핵추진 비상시국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재계는 그 어느 때보다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 대형 악재가 더해졌다고 본다. 당장 다음 달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하면 글로벌 정세는 예측불허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는 높은 관세를 앞세운 통상 정책을 예고하고 있는데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은 직격탄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수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1.8%로 0.4%포인트나 내렸다. JP모건, 한국은행도 1%대 후반으로 예상한다. 이유는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끌어올릴 상방 요인은 많지 않은데 하방 위험이 많다”(골드만삭스)는 것이다. 실제 이자가 비싼 ‘급전’을 쓰는 기업도 늘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시가총액 상위 50개 기업(공기업‧금융사 제외)의 분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 3분기 단기차입금(만기 1년 미만)은 20% 늘어난 83조원 수준이었다.  

2025년 한국 경제성장률, 1%대 전망 속속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각기관]

2025년 한국 경제성장률, 1%대 전망 속속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각기관]

기업들은 투자도 망설이고 있다. 국내 500대 기업(매출액 기준) 10곳 중 6.8곳은 내년 투자 계획이 없거나 미정인 상황이다(한경협 조사). 아예 투자하지 않겠다는 기업도 지난해의 두 배 수준인 11.4%다. 이유는 국내외 경제전망이 부정적(33.3%)이고 국내 투자환경이 악화(20%)하고 있으며 내수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전망(16%)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돌발 변수까지 생겨 기업들은 시계제로를 호소하고 있다. 

당장 생산이 중단되거나 수주가 취소되지는 않지만 신규 계약 수주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생산 거점을 통해 지역별로 공급망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미치는 당장의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이런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기업들이 해외에서 영업하고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재계는 한시가 급한 산업 정책이 무기한 미뤄지다시피한 상황에 아쉬워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업계는 여야가 모처럼 반도체산업 육성에 뜻을 모았는데, 그간의 논의가 물거품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비상계엄 사태 전까지만 해도 국회에선 여야가 반도체 등 첨단산업 지원을 위한 법안들을 잇달아 발의하며 논의를 진행하던 차였다. 여당이 반도체특별법에 기업에 대한 재정 지원과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적용 예외를 반영한 이후 상임위에서 야당과 이견을 좁히려 했지만, 현재로선 논의가 어려운 상황이다.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설비투자 세액공제의 일몰 기한도 2029년 말까지 연장하는 데 여야가 가까스로 합의했지만, 법안 통과가 무산될 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탄핵 정국으로 가면서 반도체 산업 지원 논의가 올스톱되는 등 경제산업 정책이 표류하게 돼 큰 일”이라며 “일본도 정부 보조금으로 공장을 짓는 등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 각국 정부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는 정치적 변수 때문에 붕 떴다”며 허탈해했다.

석유화학업계도 고심이 깊다. 당장 정부의 ‘석유화학 경쟁력 강화 방안’ 실행 여부가 불투명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석유화학 업계와 함께 지난 4월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협의체를 출범하고 준비해왔다. 석유화학 기업 관계자는 “국무위원들이 사퇴하겠다고 한 상황에 뭘 할 수 있겠냐”며 “정부 지원 하에 산업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자산을 매각하며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는 석유화학 기업들은 환율 변수와 금융 비용 상승을 우려한다. 정유 업계는 환율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는 원유를 전부 수입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손해라 환율 불안에 따른 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재계는 어떤 방향이든 빠른 정국 안정을 기대한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의 국정 공백 기간이 길수록 리스크도 커지기 때문이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불확실성인데 현재 대내외 불확실성이 모두 극대화된 상황"이라며 “어느 쪽으로든 상황이 빠르게 정리되는 게 기업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