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스포츠 라운지
소림5권, 살수와 거리 먼 건강 체조
가해자들은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법정에서 사건 당일 인근 폐쇄회로(CC)TV가 공개됐다. 피해자는 A씨의 주먹과 발차기를 맞고 쓰러졌고, B씨는 쓰러진 피해자의 얼굴을 걷어찼다. 재판부가 경위를 묻자 A씨는 “태권도를 하다 보니 습관적으로 발차기를 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가 “거리를 두고 정확히 목표를 정해 가격한 것인가. 조준해서 찬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A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주먹이든 발차기든 운동을 한 사람의 동작은 ‘습관적’이다. 반복해서 훈련한 동작은 뇌가 지식으로 정제해 기억 속에 저장하기 이전에 근육에 새겨진다. 어릴 때 배운 자전거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다시 탈 수 있는 것은 이 머슬 메모리(Muscle memory)의 결과다. 당시 임재근은 은퇴한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클럽의 살인자들은 대학에서 태권도를 전공했다. 복싱이든 태권도든 무술은 살상의 기술이다. 단련한 사람에게 맞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1980년대 미국의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는 동양 무술을 희화화한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주로 활극영화들인데, 예를 들면 이렇다. 악당이 “아비요~!”를 외치며 여러 가지 무술의 기본동작을 해 보이며 주인공을 위협한다. 악당은 대개 우두머리의 이름 없는 졸개로, 보통은 동양 사람이다. 주인공은 그 꼴을 바라보다 뚜벅뚜벅 다가가 주먹 한 방을 날린다. 악당은 허무하게 푹 쓰러져 정신을 잃는다. 할리우드의 무례와 오만이다.
우리는 스포츠나 체육이 서양에서 시작되었거나 그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포츠 종목 가운데 상당수가 동양에서 시작되었거나 먼저 성행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수없이 많다. 체육학자 하워드 크누켄은 여러 고고학적 증거를 들어 예수 탄생 이전에 체계화된 스포츠가 중국에 존재했음을 논증했다. 3400년 전에 그려졌으리라고 추정되는 윈난성 창위안의 벽화는 동시대인들의 다양한 신체활동을 표현했다.
중국 무술의 존재를 서양에 대중적으로 알린 인물은 영화배우 이소룡이다. 본명은 리전판(李振藩), 영어이름은 브루스 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그는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이 큰 무술가이자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액션은 연기가 아니다. 그가 수련한 무술의 결과물이다. 이소룡이 요절한 다음 중국 무술은 쿵푸로 대변되고, 이는 곧 소림사(少林寺)라는 사찰로 직결되었다. 하지만 이소룡의 권법은 소림사와 직접 관련이 없다.
소림사는 중국 허난성에 있다. 서기 496년 북위의 효문제가 인도 승려 발타를 위하여 창건했다. 달마가 좌선했다는 전설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소림사를 진실로 유명하게 만든 소재는 무술이다. 달마가 수행자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용·호랑이·표범·뱀·학 등의 움직임을 본떠서 만든 것이 소림5권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건강 체조. 맞았다가는 피를 토하며 목숨을 잃는 살수(殺手)와는 거리가 멀다.
서양 격투기의 역사는 신화시대로 소급된다. 제우스는 올림푸스의 패권을 놓고 아버지 크로노스와 레슬링 한 판을 겨뤘다. 복싱은 아폴로가 아레스와 싸워 이긴 다음 승리를 기념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는 그리스 병사들이 복싱 하는 대목이 나온다. 기원전 496년에 열린 고대 올림픽에서는 경기를 하다 선수가 죽자 이긴 선수의 우승 자격을 박탈했다는 기록이 있다. 복싱은 2500년 전에도 위험한 운동이었다.
무술은 스승에게서 제자로 이어지는 전승(傳承)의 스포츠다. 무술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항상 제자가 스승을 찾아가 배운다. 스승은 교육에 앞서 혹독한 노동과 수모를 강요한다. 무술이 기술이 아니라 인격의 기초 위에 서야 함을 새기게 하려는 것이다. 마음의 기초 위에 기술의 집을 지었다면 삶을 지키는 선업(善業)이 된다. 임재근에게도, 클럽의 살인자들에게도 스승이 있었을 것이다.
잔혹한 가치관 심는 어둠의 영역 있어
‘클럽 살인’이 언론에 보도된 다음날, 소속대학의 총장이 태권도부 사범들을 불렀다. 사범들은 “문제 학생들은 최근 특기생 자격을 반납한 ‘일반학생’이다. 태권도부와 관계없다”고 잡아뗐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 교명(校名)이 언론에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는 데만 홍보 역량을 집중했다고 한다. 사범들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교직생활을 이어갔다. 나중에 이 학교 교수에게 들은 말이 있다.
“여러 해 전에도 태권도부 아이들이 여의도 호프집에서 다른 손님을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있다. CCTV도 없던 시절이니 누가 때렸는지 어찌 알겠나. 경찰도 못 찾아냈다. 그 친구는 무사히 졸업해서 지금 직장생활 잘하고 있다.”
살인 기술을 가르쳤을 사범은 없다. 하나 ‘특기생이 아니니 내 제자가 아니다’라는 불인(不仁), ‘검거되지 않았으니 무탈하다’는 몰염(沒廉)은 교육의 전당임을 의심하게 만든다. 엘리트 체육이 빈발하는 폭력과 성폭력 등의 일탈을 불식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도 여기에 있다. 제도나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둠의 영역이다. 젊은 살인자들은 잔혹한 가치관을 훈습했을 수밖에 없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고깃덩이를 싼 종이에서는 피비린내가 난다.
필자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유도를 수련했다. 학교에서 교과 과목으로 가르쳤다. 유도를 배운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띠로 단단히 여민 도복을 어깨에 걸치고 등교할 때는 자부심이 차올랐다. 학교에는 유도부도 있었다. 유도장 벽에 교장선생님의 휘호가 걸렸다. ‘유도는 術(술)이 아니요 道(도)다.’ 우리는 어렸지만 말씀을 이해했다. 유도를 함께 배운 동기 중 한 명은 존경받는 유도사범이 되었다. 그의 제자 세 명이 올해 파리 올림픽에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