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윤 대통령이 문제가 많은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는 말이 회자한다. 느닷없이 선포한 비상계엄이 워낙 황당해서다. 늦은 밤 담화에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반국가 세력이 누군가 했더니 계엄 때 체포 대상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이 열거됐다.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정치권 인사들이 '반국가 세력'이었던 셈인 걸 보면 그는 세르반테스의 소설에 나오는 돈키호테와 닮았다. 기사 소설을 너무 많이 읽다가 자신도 기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돈키호테는 풍차를 보고 거인이라며 싸우려 든다. 양 떼를 적군이라며 공격한다. 계엄 때 부정선거 조사를 목적으로 선관위를 뒤졌다고 하니, 윤 대통령은 기사 소설 대신 극우 성향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계엄이 성공할 거라고 봤다면 그 역시 착오다. 이전의 마지막 계엄령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 뒤 발령돼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확대한 것으로, 45년 전이다. 한국의 디지털 생태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계엄 선포 후 국회에 집결한 병력 주변에는 늘 휴대폰을 든 수많은 유튜버와 시민들이 있었다. 전 국민이 계엄 현장 실시간 온라인 생중계를 봤다. 휴대폰을 들고 나타나는 그 많은 목격자를 모두 연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이 아니더라도 온라인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의원들이 어디에 있든 실시간 투표가 가능해지면 앞으로 계엄은 시도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국가세력' 망상의 최후
수도권 잃으면 선거 필패
국힘, 탄핵 투표 참여해야
수도권 잃으면 선거 필패
국힘, 탄핵 투표 참여해야
국민의힘은 모든 문제를 일으킨 윤 대통령이 속한 여당이다. 여당의 상당수 ‘친윤’ 의원들은 그동안 윤 대통령 편을 들며 온갖 문제점이 노출돼도 직언조차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뚱딴지같은 계엄으로 한국 민주주의에 폭탄을 던졌는데,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이 이대로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승리 가능성이 작다면 특단의 조치를 해도 이길까 말까 한 것 아닌가?
국민의힘이 수도권을 잃고 영남 정당화돼 있는 점도 자중지란의 한 원인이다. 지난 4월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수도권에서 19석을 얻는 데 그친 반면 민주당은 102석을 차지했다. 수도권 민심과 비슷해지는 경향이 강한 충청에서도 국민의힘은 충남 3석, 충북 3석을 얻었을 뿐 대전·청주에서 전패하며 민주당 20석에 턱없이 못 미쳤다. 2022년 대선 때 수도권은 박빙이었고, 서울에선 윤 대통령이 앞서기도 했는데 다 까먹었다.
이런 지형도에서 계엄 사태로 수도권 민심이 들끓는데도 국민의힘은 탄핵 투표 거부 같은 헛발질을 하고 있다. 대선에서 이기려면 지금도 윤석열을 지지한다고 하는 10% 안팎 표로는 불가능하고, 중도층으로 확산해 과반을 얻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국민일보 의뢰로 지난 6~7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 여론은 서울에서 77%, 반대 22%였다. 인천·경기도 찬성 77%, 반대 19%로 비슷했다. 부산·경남은 찬성 69%, 반대 28%로 이미 판이 뒤집혔다. 대구·경북에서만 찬성 54%, 반대 41%였다. 국민의힘이 일부 극렬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정치적 이해관계만 따지다가는 당의 존폐를 걱정하게 될 것이다. (자세한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지난 7일 국회 탄핵 표결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단체 퇴장한 상황을 보며 새누리당 출신 김용남 전 의원은 라디오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 들어오면 진짜 멍청한 거예요. 정치인으로서, 현역 의원으로서의 자기 운명을 윤석열하고 한 몸으로 묶는 멍청한 짓이 어디 있어요. 누가 봐도 윤석열은 내란 수괴라 나락으로 떨어질 일밖에 없고 사법처리되면 무기징역 정도 선고될 것 같은데…. 똘똘하면 본회의장 들어와 투표할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 멍청한 게 문제예요.” 2차 탄핵 표결이 14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