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장 집단 퇴장으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를 무산시킨 국민의힘이 ‘내년 2~3월 윤 대통령 퇴진’ 로드맵 초안을 대안으로 내놨다. 내년 4~5월에 대선을 치르는 시간표다. 여당이 주장해 온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이다. 초안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곳곳에서 의문이 생긴다. 이 계획은 윤 대통령이 앞으로 3~4개월 숨죽이며 지내다가 자진 하야해야 실현된다. 설령 윤 대통령이 순순히 따른다 해도 적법 논란이 불가피하다.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 병력을 투입한 내란 혐의에도 국군통수권이 법적으로는 윤 대통령에게 있다는 모순은 어떡할 것인가.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 투입된 제1공수특전여단의 이상현 여단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계엄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민규 기자 / 20241210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제시한 대통령 2선 후퇴는 국제사회를 납득시키기도 어렵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가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 “(그런 체제가) 한국 헌법에 부합한 조치인가”라고 물은 것이나,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이 “한국의 정치 절차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대목을 보라.
윤 대통령이 조만간 구속된다면 자연스레 직무가 정지된다는 관측도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어제 구속영장 실질심사마저 포기했고 “윤 대통령이 문을 부수고 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는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의 증언이 나왔다. 계엄 선포 이틀 전부터 준비했다는 폭로도 추가됐다. 그러나 헌정 사상 현직 대통령이 수감된 사례가 없기에 대통령 권한행사 정지에 관한 판례 또한 부재하다. 헌법이 규정한 ‘사고’로 간주해 총리가 권한대행을 해야 한다는 게 다수설이긴 하지만, 윤 대통령이 옥중 결재를 하겠다고 나서면 혼란이 불가피하다. 법적 요건을 따지기 전에 구속된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는다는 건 법감정과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국제적 망신이기도 하다. 더욱이 한 총리는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서 이를 제지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비해 탄핵은 대통령 권한 행사가 곧바로 정지되며 3개월 안팎이면 파면 여부가 결론난다. 어느 쪽 불확실성이 더 큰가. 일각의 주장대로 윤 대통령이 이른 시일 내에 하야한다면 얘기는 다르다. 그러나 국회에 특수부대를 투입할 정도로 무모한 모험을 감행한 윤 대통령이 조용히 물러날지 의문이다. 탄핵소추돼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할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리지 않겠나. 여당의 엉성한 로드맵은 자충수이자 시간 낭비일 뿐이다. 이 와중에 친윤-친한 의원들은 새 원내대표 자리를 두고 다투는 추태까지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방안 중에선 탄핵소추를 통해 윤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하는 편이 ‘질서 있는 퇴진’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윤 대통령의 즉각 사퇴 같은 강력한 대안이 아니라면 어떤 방법을 들고나와도 편법과 위법, 반헌법이라는 시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