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총선 참패, 계엄 선포로 보수 세력 세 번 죽여”
“윤, 국회의원 끌어내라” 지시했나 진실공방…비화폰이 관건
“국민의힘은 사형 선고 직전…국민과 가까워지려는 노력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무슨 개그를 하시나 싶었습니다. 평온한 밤에 뜬금없이 계엄 선포라니요. 이건 국민께 석고대죄해도 부족한 짓입니다.
서울 서초구에 자리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보수 논객’ 전원책(69) 변호사 얼굴에는 근심과 피로가 얼룩져 있었다. 갑작스러운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보수 진영을 절벽 끝으로 몰아넣었다. 국민의힘은 외부적으로 ‘내란 정당’이라는 오명에 허덕이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친윤-친한 계파 갈등이 더는 수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과연 보수 진영은 이 엄혹한 시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전 변호사는 “당이 갈라지는 건 명약관화하다”라며 “크리스마스 이후 당 내외 인사들이 두루 모여 보수 진영의 차기 대권 주자를 발굴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 활동 금지한 포고령 1호, 너무 허술해”
윤 대통령은 왜 12·3 비상계엄을 선포했을까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처음에는 대통령께서 무슨 개그를 하시나 싶었습니다. 평온한 밤에 계엄 선포라니요. 농담입니다만, 저는 계엄 선포를 보고 ‘윤 대통령이 알코올성 치매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로 이번 계엄 선포는 말도 안 되고 너무 허술해요.”
어떤 점이 허술해 보이던가요?
“예컨대 포고령 제1호에서 ‘모든 정치 활동을 금한다’고 했습니다. 국회에 비상계엄 해제 요구권이 있고, 그래서 국회를 완전 정지시킬 수는 없단 말이에요. 그런데도 정치 활동 금지를 포고령에 넣은 건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전 변호사는 중령으로 예편한 장교 출신이다. 1981년부터 육군 장기군법무관으로 10년 6개월간 복무해 중령으로 전역했다. 당시 전 변호사는 군사법원에서 근무하며 비상계엄 사태를 경험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을 향한 경고성 비상 계엄이라고 주장합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탄핵과 특검, 야당 대표의 방탄으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있다’고 했는데, 일리 있는 말입니다. 다수결이 만능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순간 민주주의가 허약해집니다. 다수의 폭정을 용인하면 중우정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윤 대통령이 정치판을 바꾸고 싶었다면, 계엄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의논을 해서 좋은 방안을 찾았어야죠. 이건 국민께 석고대죄해도 부족한 짓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야당이 공동발의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지난 14일 오후 4시경 본회의에 상정돼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의결정족수(200명)를 넘어 가결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가결을 선포한 뒤 “공석인 헌법재판관 임명도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서두르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 내란죄 성립 여부가 중요해졌습니다.
“우리 형법상 내란죄가 성립되려면,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판례를 보면 폭동은 적어도 한 지역의 소요 사태 정도는 돼야 합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번 비상계엄이 직권남용 등 다른 법률 위반이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란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봐요. 앞으로 헌법재판소에서 이 점을 두고 엄청난 공방이 벌어질 것입니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윤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제가 봤을 때 앞으로 가장 논란이 될 부분이 바로 그 진술입니다. 윤 대통령이 비화폰(보안 처리된 전화)으로 전화해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것인데, 반면 윤 대통령은 12·12 담화에서 ‘국회 출입을 막지 않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비화폰으로 통화했기 때문에 어느 쪽 진술이 맞는지 증명하기는 상당히 힘들 것입니다. 아마 지시를 했느냐, 아니냐를 두고 양측의 진실 공방이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윤 대통령이 내놓은 12·12 담화는 탄핵 정국의 결정적 장면 중 하나다. 계엄 선포 이후 침묵을 이어가던 윤 대통령은 이날 작심한 듯 30분가량 야당에 대해 국정을 마비시키고, 국헌을 문란케 한 세력이라고 질타했다. 담화가 끝난 뒤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사실상 내란을 자백하는 취지”라며 윤 대통령의 제명·출당을 위해 당 윤리위원회를 즉각 소집했다.
“윤석열 ·한동훈이 보수를 세 번이나 궤멸시켜”
드라마틱한 반전이 없는 이상 윤 대통령은 후세에 보수 진영을 사지로 내몬 대통령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윤석열·한동훈은 우리 보수를 세 번이나 궤멸시킨 장본인들입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사실 국민의힘 입당이 아닌 창당을 준비했습니다. 보수를 궤멸시켰는데 무슨 염치로 보수 정당에 들어올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국민의힘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상대할 카드가 없으니 정진석 의원이 전격적으로 윤 대통령을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데려온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3일(현지시간) 여론조사 기관인 모닝컨설트의 세계 주요 민주주의 국가 25개국 지도자 지지율 조사를 인용 보도한 바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낮은 15%로 조사됐다. 해당 조사는 계엄 선포·해제와 그로 인한 탄핵 논란이 발생하기 전에 이뤄졌다. 한국갤럽이 계엄 선포 이후인 10∼12일 조사하고, 1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11%로 집권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세 번이나 보수를 궤멸시켰다고 말씀하셨는데?
“첫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켰습니다. 박근혜와 최서원은 경제 공동체라는 이론을 만들어낸 사람이 윤석열·한동훈입니다. 둘째는 한동훈이 지난 총선을 자신의 대선 전초전으로 활용해서 전례 없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당시 국민의힘 공천을 보고 저는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도저히 공당의 공천이라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지난 선거에서 패배한 인물을 그대로 데려와 공천을 주는데 어떤 유권자가 그 후보에게 표를 주겠습니까. 참패한 뒤에도 반성 없이 당 대표로 다시 나와 당을 이 지경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셋째는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것입니다. 저는 윤 대통령을 편들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어요. 오히려 왜 비상계엄 선포 같은 엉뚱한 짓을 해서 우리 보수를 궤멸시키는지 묻고 싶습니다. 난 윤석열·한동훈이 우리 보수의 적이라고 봐요.”
“한동훈이 文정부 때 휘두른 칼에 보수 주자 전멸”
한동훈 전 대표는 보수의 차기 리더십이 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시는 건가요?
“작년 2월 한동훈이 법무부 장관이던 시절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민주당의 공격을 받자 ‘나에게 화양연화가 있다면 문재인 정권 초기였다’고 했습니다. 화양연화는 꽃 같은 시절을 뜻하고, 문재인 정권 초기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아래서 3차장을 하던때입니다. 즉, 박근혜 정권 인사들에게 적폐 청산이라는 서슬 퍼런 칼을 휘두르고 있을 때가 자신에게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절이라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당시 적폐 청산으로 우리 보수 진영에는 대표선수가 사라졌습니다.”
한 전 대표는 대통령이 내란죄를 자백했다고 말해 친윤계로부터 크게 질타를 받았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검사 출신인 자가 어떻게 그 말을 자백이라고 표현할 수 있나요. 그런 실력으로 검사장까지 오른 겁니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동료를 배반할 수는 있습니다. 저는 그런 것까지 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적어도 비겁하면 안 되죠. 아닌 말로, 윤 대통령이 이 지경이 되도록 본인은 무엇을 했습니까. 비판외에 한 게 있습니까? 저는 한동훈이 정상배(政商輩, 정권을 이용해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무리)로 전락했다고 봐요.”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입니다. 국민과 함께 막겠습니다.” 12월 3일 밤 10시경 한동훈 대표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밝힌 후 그의 주가는 크게 뛰었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계엄을 막은 여당 대표’라며 호감을 표했다.
하지만 지난 7일 1차 탄핵안 표결 전후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 대중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질서있는 조기 퇴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소통령이 되려고 욕심을 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동훈의 패착은 무엇이었을까요?
“‘질서 있는 퇴진’이죠. 제가 알기로는 2~3월 윤 대통령 하야, 4~5월 대선 실시가 거론됐는데, 이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면 누가 대선에서 붙겠어요? 이재명과 한동훈이죠. 여기에 다른 사람이 개입할 여지는 없습니다. 누가 끼어들겠어요? 오세훈이 끼어들겠어요, 홍준표가 끼어들겠어요. 그런 대선판이 과연 우리 국민께 정상적인 선택지를 제공해주는 선거가 될까요? 이재명은 범죄 혐의자고, 한동훈은 이미지 정치인입니다. 두 사람 중에서 5년 동안 우리 군 통수권자,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면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조기 대선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해소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이 대표는 12개 혐의로 5개 재판(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사건,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성남FC 사건,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법인카드 유용)을 받고 있다. 이 중 선거법에 따라 내년 5월쯤 이 대표에 대한 확정판결이 내려질 수 있는데, 공교롭게도 조기 대선 역시 이르면 내년 5월쯤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내 친한계, 친윤계 공세 견뎌내기 힘들어”
만약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이재명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보수 진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마냥 유리하다고 보기는 힘들죠. 문재인 정권은 5년 만에 국민의힘에 정권을 내줬습니다. 소득주도 성장은 실패했고, 일자리는 엄청나게 줄어들었죠. 이러한 실패를 감추기 위해 통계를 조작했습니다. 당시 문재인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엄청났습니다. 지금 진보 진영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외에 플랜B가 없습니다. 저는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보수 진영에 분명히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 심판 기간을 180일 이내로 규정한다. 이에 헌재는 늦어도 2025년 6월 초까지는 탄핵을 인용할지 기각할지 결론을 내려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탄핵 의결부터 선고까지 6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91일 걸렸다. 선례를 봤을 때 심판이 지연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윤 대통령은 파면되고 즉각 대선 국면에 접어듭니다. 하지만 만약 기각된다면 정국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이미 윤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보장된 5년 임기를 마치겠다는 생각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기각된다면 적어도 자신의 임기를 1년은 단축한 뒤 책임지고 4년 중임제 개헌을 끝마치고 물러나야 합니다. 이것이 후세에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입니다.”
국민의힘은 결국 분당의 길을 걷게 될까요?
“친한계가 이번 탄핵안 표결 과정에서 선을 넘어버렸죠. 친윤계와 친한계는 같은 길을 갈 수 없는 사이가 됐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분은 더욱 심각해질 것인데, 이번 원내대표 선거와 탄핵안 심판 표결에서 드러났듯 친한계의 세가 생각보다 많이 약합니다. 제가 봤을 때는 친한계가 친윤계의 공세를 견뎌내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초·재선-올드보이 뭉쳐 신구 조화로 보수 재건해야”
한동훈의 미래는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윤 대통령의 출당과 제명을 강력하게 요구했죠. 그때 한 전 대표는 대중이 자신에게 신망을 보낼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는 한동훈 역시 배신자로 낙인 찍힐 것이라고 봐요.”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의힘의 새 구심점이 될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검찰 출신의 5선인 권 의원은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입당 이후 경선 캠프 총괄상황실장으로 활동하는 등 ‘원조 친윤’으로 이름을 날렸다. 권 신임 원내대표의 임기는 1년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진행되는 과정에 친윤계가 원내대표를 맡았습니다. 권 원내대표는 내홍을 잘 수습할 수 있을까요?
“권성동 원내대표는 일종의 야전 사령관입니다. 법률가로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리라고 봅니다. 아마 윤 대통령이 내란죄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판단하고 있지 않겠어요?”
국민의힘은 뼈를 깎는 쇄신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한동훈을 쫓아내면 국민의힘이 아주 건전한 정당이 될 것이냐? 그냥 친윤계가 장악한 정당으로 평가받겠죠. 지금 국민의힘은 계엄 선포로 국민과 거리가 멀어져 버렸습니다. 정당이 국민과 멀어진다는 건 사형 선고나 다름없어요. 자칫 불임 정당이 될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다시 국민과 함께할 것이냐’를 두고 내부에서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보수 진영은 이 혼란한 정국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요?
“보수 진영은 이제 윤석열은 물론이고 한동훈과도 결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경쟁력 있는 대체 주자도 없는 상황입니다.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죠. 하루빨리 흔들리는 보수를 다시 뭉치게 할 새로운 주자를 찾아야 합니다. 크리스마스 이후당 내외 인사들이 두루 만날 예정입니다. 국민이 대혼란에 빠져 있는 지금, 어떻게 우리 보수가 혼란한 정국을 바로잡을 수 있느냐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보수는 새 출발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젊은 초·재선 의원들과 경륜을 갖춘 올드보이들이 모여 신구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보수를 재건해야 합니다. 보수가 재건되면, 진보도 ‘이재명 사법리스크’에 질질 끌려다니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