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의 예술과 정치
예술 행사에서 집단으로 국기를 흔드는 행태는 나치 시절 선동 목적으로 열린 뉘른베르크 집회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다. 독일 사회에서 허락된 예외가 있다면 월드컵과 유로에서 여러 번 우승한 축구 정도다.
독일은 작곡가, 악단, 오페라극장, 콘서트홀, 페스티벌, 교육기관 등 클래식 음악의 각 요소에서 절대적 위치에 있지만 이를 국가브랜드로 승화하는 움직임은 없다. 수세기 동안 독일의 문화 육성 책임은 도시, 지역 사회, 연방의 개별 주(州)에 있었다. 나치 과거사 반성으로 가급적 국가와 집단을 드러내지 않는 사회적 합의에 더해, 중앙정부 대신 주정부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연방제 역량을 극대화한 서독식 제도를 클래식 생태계도 따르고 있다.
슈뢰더·메르켈, 클래식 전략적으로 활용
총선으로 연방 의회를 구성하고 의원들이 총리를 선출하는 독일 선거제에서 정치 지도자의 자질은 주로 연설로 드러났다. 역대 총리 가운데 사회민주당 출신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웅변으로 호소했고, 기독교 정파 계열의 콘라트 아데나워, 헬무트 콜, 앙겔라 메르켈은 담백한 성격으로 차분히 토론을 이끌었다. 1949년 서독 건국 이후 총 9명의 독일 총리 중엔 본인의 클래식 취향을 정치에 활용한 사례가 적지 않다.
초대 총리 아데나워는 엄숙한 태도처럼 음악과 예술 취향 역시 고전적이었다. 외교에선 현실주의를, 내정에선 ‘실험금지’를 내세웠듯 아데나워는 가톨릭 신자가 규범적으로 듣는 종교음악에 귀를 열었다. 재무장관으로 ‘라인강의 기적’을 주도한 2대 총리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는 어려서 클래식에 심취했고 지휘자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가 전부는 아니지만, 경제 없이는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다”는 철학으로 경제성장 후순위에 예술을 뒀다. 뤼벡의 노동자 가정에서 자란 4대 총리 브란트는 콘서트홀 대신 오디오로 행진곡의 오케스트라 편곡을 즐겼고 은퇴 후엔 파티에서 노동자들이 흥얼거리는 민요를 불렀다.
독일 통일을 완수한 6대 총리 콜은 부인 하네롤레 영향으로 오르간 음악을 선호했고 특히 프란츠 람베르트 작품을 좋아했다. 또한 음악가와 오케스트라의 정치적 영향력를 간파해 소련 붕괴후 독일로 이주한 유태인 음악가들의 지위를 각별히 챙겼다. 반유태주의 철폐 운동가로도 유명한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빗이 콜의 업적을 기리는 이유다. 고문으로 있던 유럽연합(EU)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EU의 행사에 불렀고 그의 장례식 음악을 연주한 곳도 유럽의회가 위치한 스트라스부르 대학 오케스트라다.
독일 현대 정치사에서 클래식 음악을 전략적으로 쓴 두 거물은 슈뢰더와 메르켈이다. 슈뢰더는 총리 재임 시절엔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바그너 악극 축제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함께 했고 퇴임 후엔 한국인 아내 김소연과 바이로이트에 모습을 나타낸다. 슈뢰더의 클래식 공연장 출입은 어려서 익힌 소양보다는 정계 입문후 유권자에 최적화된 음악 취향을 보이는 정치 전략으로 읽힌다. 대중 행사에 나가 본래 즐기는 노동가요를 불렀다간 정치적 역풍이 불 가능성을 감안한다고 독일 언론에 밝힌 적 있다.
슈뢰더는 총리 퇴임 이후 푸틴 정책과 보조를 맞추는 수단으로 음악을 썼다. 프랑스 언론인 마리옹 반 렌테르겜은 저서 『노르트스트림의 덫』에서 푸틴 정권이 슈뢰더와 사회민주당 출신 각료를 러시아 에너지 회사 가스프롬 로비스트로 동원해 어떻게 독일의 러시아 가스 의존을 높였는가를 기술했다. 슈뢰더는 러시아에서 뻗어나온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이 독일로 들어오는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서 열리는 문예 행사에 나타나 지역내 친러 여론을 조성했다.
“러 이익 연결” 슈뢰더 음악정치 비판도
메르켈은 슈미트를 능가하는 열렬한 클래식 애호가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재임 16년을 마감하는 퇴임식 음악도 스스로 골랐다. 메르켈의 총리 족적을 따라가면 음악이 따라 붙는다. 2017년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 축하연에선 엘프필하모닉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환희의 송가를 연주했다. 독일 내각 대변인은 ‘인류, 평화, 국제적 이해에 대한 찬가’라고 부연했지만, 회의에 동석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향한 메르켈의 메시지와 다름없었다. 클래식을 즐기지 않는 트럼프에게 그나마 들을만한 음악을 틀어준 셈이다.
2010년대 초반 독일이 유로존 위기를 환상적으로 벗어날 때, 메르켈이 저녁에 찾은 곳은 베를린 필하모닉홀과 베를린의 주요 오페라극장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홀 개관 50주년 공연을 찾아 “음악은 내 인생에 큰 역할을 했다”고 음악가와 관계자를 격려했고, 베를린 슈타츠오퍼에 들를 땐 “플루트와 피아노를 조금 배웠지만 실은 노래를 더 좋아한다”고 성악가의 노고를 치하했다. 메르켈은 공연 중간 휴식 시간에 유럽 각국 정치인들과 마치 유로스타 역에서 커피를 들 듯 유로존 문제를 논의했다.
난민 문제로 독일이 위기에 처할 때 메르켈을 지원한 건 클래식 지휘자들였다. 베를린 필하모닉 음악감독을 역임한 사이먼 래틀은 “내가 지휘하는 3시간 30분짜리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eas et Melisande)를 듣기 위해 메르켈이 공연장에 왔을 때 독일은 난민 위기의 정점이었다. 국경 개방은 메르켈이 내린 가장 용감한 제스처이고, 나는 총리 부부를 집에 초대해 저녁을 대접했다”고 우정을 과시했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음악감독을 지낸 다니엘 바렌보임은 “메르켈은 바쁜 와중에도 티켓을 사서 온다”고 추켜세웠다. 영국 가디언이 “영국 총리는 문화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변명을 늘어놓고 자리를 떠난다”면서 부러워한 장면도 메르켈과 전 독일 외무장관 디트리히 겐셔가 자리를 함께 한 2015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었다.
숄츠 현 총리는 오보에를 익힌 과거를 어필하며 자신이 악기가 기준음을 잡듯 중재에 능하다고 했지만, 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녹색당의 신호등 연정은 결국 붕괴됐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기독민주-기독사회연합 프리드리히 메르츠도 음악 애호가다. 트럼펫 주자 틸 브뢰너의 재즈를 즐겨듣고, 직접 관악기를 불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