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尹 '탄핵 스모킹건' 주며 몰락 자초…韓 장기 불확실성 돌입"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14일 가결되자 해외 주요 언론들은 한국 정치 상황이 최악의 시기를 지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탄핵 심판 절차 중 불거질 리더십 공백 문제로 “장기 불확실성 시기에 돌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4일 서울 여의도 일대에서 시민들이 중앙일보 호외를 보고 있다. 김종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4일 서울 여의도 일대에서 시민들이 중앙일보 호외를 보고 있다. 김종호 기자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탄핵소추안 통과로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다소 완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WSJ은 “(탄핵안 가결은)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식히고, 누가 국정을 이끌지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을 없앴다”고 평가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시위현장에선 걸그룹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의 가사인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이 들렸다”며 “탄핵안 가결은 (한국에서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이후) 특별한 열흘이 끝났음을 알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윤 대통령 스스로 몰락 자초”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4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4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탄핵안 가결의 책임은 윤 대통령에 있다는 게 외신들의 전반적 평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당 인사들도 나름의 논란을 안고 있지만, 윤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지은 건 자신의 행동이었다”며 “계엄 도박이 오랜 기간 (윤 대통령) 탄핵을 노려온 야당에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을 제공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품위 있는 퇴진’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윤 대통령은 담화로 끝까지 싸울 의지를 드러내며 몰락을 자초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윤 대통령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으로서 민주주의의 수호자처럼 비쳤지만 한국 내에선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다”며 윤 대통령이 언론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추진한 것이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 미국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에 대해 “(윤 대통령이) 민주주의에 반하는 쿠데타를 자행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자만심으로 인해 미국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BBC는 윤 대통령이 지난 2017년 검사 시절 국정농단 수사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데 일조했지만, 반대 세력에 대한 강압적이고 비민주적 대응으로 자신도 같은 운명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한국, 장기 불확실성에 돌입”

지난 4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마트 신문 가판대에 이날자 1면 머릿기사와 사진으로 한국 계엄 사태를 다룬 월스트리트저널(WSJ·왼쪽부터),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등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마트 신문 가판대에 이날자 1면 머릿기사와 사진으로 한국 계엄 사태를 다룬 월스트리트저널(WSJ·왼쪽부터),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등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탄핵안이 가결됐지만,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는 지적도 많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윤 대통령이 탄핵안 가결 소식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며 “전문가들은 14일 투표가 정치적 혼란의 끝을 의미하지 않을 거라 본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대 6개월이 걸리는 탄핵 심판으로 인해 한국은 이제 장기 불확실성에 돌입했다”며 “전문가들은 이 권력 공백이 미국과 외교·무역 정책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신속대응 능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북한의 핵 위협 증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임박 등의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 선출직이 아닌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한국을 이끌게 된다”고 지적했다.

“유력 대선주자 이재명도 5개 재판 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한국 정계에 퍼진 ‘사법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지적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 총리 등 내각 각료들이  (계엄 사태 관련) 수사를 받고 있어 리더십 공백의 잠재적 위험이 남아 있다”며 “조기 대선이 실시되면 유력 주자가 될 이재명 대표 역시 선거법 위반 혐의 등 5개 재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탄핵안 표결 당일 국회 앞에서 열린 대규모 시민 집회에 대해선 “전 세대가 노래를 부르고 응원봉을 든 모습은 케이팝 콘서트 같았다(WP)”는 평가가 나왔다.

바이든 “한국 민주주의 신뢰, 동맹 변함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사태에 대해 해외 주요국은 “상황을 주시하며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5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통화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신뢰하고 철통 같은 한미동맹은 여전히 변함없다”며 “한 권한대행이 자리에 있는 동안 한·미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심축(linchpin)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한국은 EU의 중요한 전략적 상대국”이라며 “한국 헌법에 따라 현재의 정치적 위기가 신속하고 질서 있게 해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대사는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한·러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지점에 가까워졌다”면서도 “한국 정치에서 일어나는 극적 사건들이 궁극적으로 (한·러 양국 관계) 회복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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