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지시를 내린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계엄사령관으로 지명되면서도 대통령의 발표 후에야 계엄을 인지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진술이 사실이라면 계엄사 설치가 박 총장에게 부여된 우선과제였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박 총장은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계엄사령부 참모진 구성을 위해 계룡대 육군본부에 있는 휘하 참모부장들에게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갑작스런 심야 명령인 탓에 연락이 닿지 않는 인원이 발생하는 등 변수가 돌출하면서 소집은 지체됐다고 한다. 군 소식통은 “다음날 오전 2시 50분쯤에야 목표한 인원인 34명이 모인 것으로 안다”며 “이후에도 추가 장비를 챙기느라 수십 분이 더 소요됐고, 버스는 3시가 넘어서야 출발했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이들을 태운 ‘계엄 버스’가 출발한 지 30분 만에 다시 계룡대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제서야 소집 명령이 철회됐다는 뜻인데, 이는 곧 윤 대통령의 계엄 해제 성명이 발표된 오전 4시 28분 직전까지도 계엄사 설치 작업은 중단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군 안팎에선 해당 버스의 출발 시점은 곧 윤 대통령 등 핵심 인물들의 계엄 진행 의사를 반영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오전 1시 1분 국회의 계엄 해제안이 가결된 직후 윤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지하의 결심실로 향한 점은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계엄 해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대통령이 즉시 해제를 선포하는 대신 계엄 주모자로 지목된 김 전 국방부 장관, 박 총장 등 소수 인원과 30분 이상 회동을 가진 게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국회의 계엄 해제 결정을 무력화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됐을 수 있다는 의혹은 그래서 나온다. 일단 계엄사 설치 작업은 기존 계획대로 진행하면서 반전이 가능할지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데 뜻을 모았을 가능성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계엄 해제 선포가 공식적으로 이뤄질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기존 명령을 미처 거둬들이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수십 명의 장군들을 군장 상태로 허탕치게 만든 건 단순 실수로만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계엄사령관 박안수 총장, 결국 구속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17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등 혐의를 받는 박 총장을 구속했다. 구속된 박 총장은 '군 미결수' 신분으로 군미결수용실에 수감된다.
검찰이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구속한 피의자는 김 전 장관과 여인형 방첩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에 이어 이번이 5번째다. 또 현역 군인으로서 합참의장 다음 의전 서열 2위인 육군참모총장이 구속된 사례는 45년 만의 일이다. 앞서 1979년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10·26 사태와 관련 내란방조죄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