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식, ‘산신령’ 별명 원칙론자…한명숙 2심 땐 무죄 뒤집어

정형식 헌법재판관이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선거관리위원회 ‘채용비리 감사’ 권한 쟁의심판 공개변론에서 착석해 있다. [연합뉴스]

정형식 헌법재판관이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선거관리위원회 ‘채용비리 감사’ 권한 쟁의심판 공개변론에서 착석해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주심을 맡은 정형식(63·사법연수원 17기) 헌법재판관에 정치권과 법조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그간 사법부 비판을 자제하던 더불어민주당조차 정 재판관이 주심으로 정해지자마자 “탄핵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박찬대 원내대표)고 바짝 긴장했다. 조국혁신당에서는 “주심을 회피하는 것이 마땅하다”(황운하 원내대표)는 주장까지 나왔다.

1961년 강원 양구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정 재판관은 법관 임용 후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장, 대전고등법원장을 역임하고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 지명으로 재판관에 임명됐다. 현 6인 재판관 체제에서 유일한 윤 대통령 지명 재판관이다. 정 재판관은 법조계에서 ‘정통파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관들 사이에서는 정 재판관의 원칙주의 면모를 ‘산신령’에 빗대곤 한다”고 말했다.

정 재판관은 굵직한 사건에서 원심을 뒤집는 등 사회적 이목을 끄는 판결을 해왔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인 2018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판결이 대표적이다. 선고 직후 파장이 컸다. 민주당은 물론, 한동훈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대단히 잘못된 판결”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후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파기됐고, 후속 심리 끝에 징역 2년6개월로 가중됐다.

2013년엔 한만호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항소심에서 1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당시에도 민주당은 “명백한 정치적 판결”이라고 비판했지만, 2015년 대법원에서 정 재판관의 선고가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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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꼭 진보 진영이 반발하는 판결만 한 것은 아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해임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의 해임처분을 이듬해 취소했다. 2013년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박정희 정부 시절 긴급조치 위반 사건으로 실형을 받았던 사건의 재심을 맡아 34년 만에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정 재판관의 이념을 오랫동안 문제 삼아왔다. 지난해 12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데다가 기름을 갖다 부어왔다”(소병철 의원)고 비판하며 청문경과보고서에 ‘부적격’ 의견을 냈다.

정치권에선 “야권의 강한 거부감은 그의 혼맥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 재판관의 아내가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의 동생이고,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 강원지사와는 이종사촌이기 때문이다.

인척 관계에 대한 야권의 경계심은 지난 6일 윤 대통령이 박 위원장을 위원장으로 임명했을 때 민주당 분위기에서도 잘 나타났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즉각 “탄핵에 대비한 뇌물”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 재판관 이념에 대한 판단이 과장됐다는 시선도 있다. 지난해 인사청문회 답변에서도 정 재판관은 민주당의 탄핵안 발의에 대해 “헌법이 살아 움직이는 과정 같다. 남발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국민의힘으로부터 “매몰된 판단”(조수진 의원)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탄핵 심리에 정 재판관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재판장인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지난 17일 “주심 재판관이 누구냐는 재판의 속도나 방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