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보살·전과자·집사…이런 민간인들에게 비상계엄 맡겼다

‘12·3 비상계엄’ 관련 수사가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이번 사태 곳곳에 민간인이 개입한 흔적이 드러나고 있다. ‘막후 설계자’로 꼽히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이어 김용군 전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단장(전 대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수족으로 꼽히던 공관 집사 양모씨까지 벌써 3명이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국헌문란에 해당할 수 있는 일련의 행위에 계엄군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어떤 실질적 권한이나 책임도 없는 민간인들이 활개를 쳤다는 뜻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사진 연합뉴스TV 캡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사진 연합뉴스TV 캡처

추행 징역형 민간인, 국가 서열 6위 체포 모의했나

 
22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계엄 이틀 전과 당일 열린 두 차례의 ’롯데리아 회동“을 주도한 노 전 사령관은 2018년 성범죄로 유죄를 선고받고 군복을 벗었다. ‘안산 보살’로 점집을 운영하며 점술가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론 김 전 장관의 비선 ‘문고리’로 활동했다.

그는 지난 1일 1차 롯데리아 회동에 현역 ‘투스타’ 문상호 정보사령관과 정보사 현직인 김모·정모 대령을 불러낼 수 있을 정도로 군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수사당국은 이들이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과 선관위 직원들을 케이블 타이로 묶고 두건을 씌워 체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민간인 주도로 국가 의전서열 6위 선관위원장을 속박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현실이 될 뻔 한 셈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경기도 안산시 소재 한 반지하 주택에서 다른 무속인과 함께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점집. 문에 ‘만(卍)’자와 ‘안산시 모범 무속인’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찬규 기자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경기도 안산시 소재 한 반지하 주택에서 다른 무속인과 함께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점집. 문에 ‘만(卍)’자와 ‘안산시 모범 무속인’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찬규 기자

 
노 전 사령관은 계엄 당일 2차 회동에선 활동 영역을 더욱 넓혔다. 구삼회 2기갑여단장(준장)은 물론 민간인 신분인 김용군 전 대령 등 새 얼굴을 모았다.  

또 다른 전과자 민간인, ‘계엄 치하’에선 수사 실세

 
김 전 대령은 노 전 사령관과 현역 시절 사단 근무를 함께 한 인연으로 의기투합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겐 불명예 전역이란 공통점도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군이 조직적으로 댓글을 단 이른바 ‘정치댓글 공작 사건’ 수사 책임자였던 김 전 대령은 수사를 무마하고 은폐한 혐의로 2018년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민주당은 관련 회동에서 정보사 내에 ‘수사2단’으로 불리는 불법 조직을 꾸리는 방안이 논의됐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 직속, 구삼회 준장을 단장으로 하고 정보사·군사경찰 인원으로 아래 3개 팀을 두는 구성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김 전 대령은 군사경찰을 전담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전과자이기도 한 ‘민간인 OB’들이 계엄령 치하에서 반정부 인사 수사에 개입하려 한 셈이다.

정보사 편제에 없는 정보사 수사2단을 꾸려 주요 인물을 체포할려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정보사 편제에 없는 정보사 수사2단을 꾸려 주요 인물을 체포할려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김 전 대령, 현역 조사본부 차장 불러내 포섭 정황

 
실제 김 전 대령은 현직 국방부 조사본부 차장인 김모 대령을 접촉했다. 김 전 대령은 조사본부 수사단장 시절 수사지도과장인 김 대령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고 한다.  

김 전 대령은 3일 롯데리아 2차 회동을 끝낸 뒤 조사본부에서 퇴근한 김 대령을 당산역 인근으로 불러내 저녁 식사를 함께 한 것으로 파악됐다. 롯데리아 회동 뒤 노 전 사령관은 자택으로, 구 준장 등은 판교 정보사 100여단 사무실로 각각 떠났고 김 전 대령 홀로 서울로 향했다고 한다. 

김용현 ‘수족’ 양모씨도 주목 대상

 
김용현 전 장관의 집사로 활동한 양모씨도 주목할 인물이다. 이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받기도 한 양씨는 김 전 장관의 동선, 통화 내용 등을 밝힐 키 맨으로도 꼽힌다. 

김 전 장관이 소대장일 때 통신병으로 인연을 맺은 양씨는 오랜 시간 김 전 장관의 수족 역할을 맡았다. 군 소식통은 “양씨는 ‘양 박사’, ‘양 집사’로 불렸다”며 “김 전 장관을 가족 못지않게 잘 아는 인물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양씨가 직접적으로 계엄 모의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지만, 김 전 장관의 충복으로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김 전 장관이 만난 인사들의 이동 등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관련자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 양씨의 존재가 계엄의 큰 그림을 맞추는 데 있어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이처럼 계엄 상황에 민간인이 판칠 수 있었던 건 김 전 장관이 현역 군인보다 민간인을 더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 있다. 군문을 떠난 지 7년이 된 김 전 장관이 취임 후 짧은 기간 현역에서 심복을 골라내는 것보다 오래 알고 지낸 민간인에 일을 맡기는 게 더 수월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곤궁한 퇴역 군인들이 이번 모의에 가담한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군 관계자는 “징역형을 받아 군인연금에서도 불이익이 있을 수밖에 없는 군인들에게 계엄 모의는 기회로 여겨졌을 수 있다”며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상황에서 ‘크게 한탕 벌여보자’는 심리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정부, 대미·대일 외교 관리 ‘안간힘’=외교부에 따르면 조태열 장관은 지난 21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통화하고 조속한 대면 협의를 위해 일정을 조율하기로 했다. 조 장관은 통화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하에서도 한미동맹이 흔들림 없이 계속 유지·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자”며 “그동안 한·미 및 한·미·일 협력 성과가 미국 신 행정부 하에서도 지속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에 블링컨 장관은 “한 권한대행은 유능하고 존경받는 지도자로서 현 권한대행 체제에 대해 전적인 신뢰를 갖고 있다”며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발전을 위해 조 바이든 행정부 임기 마지막까지 긴밀히 공조하자”고 화답했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은 22~26일 미국과 일본을 차례로 방문해 한·미 및 한·일 외교차관 회담을 갖는다. 김 차관은 탄핵 정국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맞물리는 상황에서 흔들림 없는 한국의 대외 기조를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