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17일(현지시간) 러시아군 고위 간부를 수도 모스크바에서 폭사시키는 등 최근 두 달간 과감한 암살 작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를 앞두고 전쟁 주도권을 잡으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에선 암살 공포가 퍼지는 가운데 외신은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의 작전 역량에 주목했다.
이날 오전 6시12분 러시아 모스크바 남동부 랴잔스키 대로의 아파트 입구 근처에 있는 전기 스쿠터(킥보드)에 장착된 폭발물이 터져 러시아군에서 화생방(화학·생물학·방사능) 무기를 총괄하는 국방부 화생방전 방어사령관 이고리 키릴로프 중장과 그의 부관이 사망했다.
키릴로프 중장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전투 지역이 아닌 곳에서 숨진 군 인사 중 최고위급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서방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암살이 SBU의 특수작전이라고 보도했다.
“최전선 사기에도 영향”…보복 촉구
최근 두 달간 우크라이나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군 인사 암살은 4차례 발생했다. 지난 10월 러시아 제52폭격기연대 소속 조종사 한 명이 러시아 브랸스크에서 망치로 살해됐다. 지난달엔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 차량 폭발로 러시아 흑해 함대 미사일함 참모장이 숨졌다. 5일 전엔 미사일 현대화를 담당했던 과학자가 모스크바의 공원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이런 가운데 군 고위 간부가 수도 한복판, 크렘린궁과 멀지 않은 곳에서 암살 당하자 러시아 시민들도 동요하고 있다. BBC는 “이번 암살은 모스크바의 일상을 뚫었다”고 전했다. 한 시민은 매체에 “지금까지 전쟁은 먼 곳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여기에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13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텔레그램 채널 라이바는 “이번 암살이 최전선 사기에도 나쁘다”고 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즉각적인 보복을 촉구했다.
“현지 협력자 없이 불가능”
폭발물을 실은 스쿠터는 이날 오전 4시경 건물 앞에 배치됐다고 한다. 폭발 장치는 휴대전화 또는 무선 신호로 원격 작동됐다. 때문에 폭파시킨 사람은 육안 또는 카메라를 통해 현장을 실시간 감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폭탄은 티엔티(TNT) 약 300g에 해당하는 비교적 작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은 “현지 협력자의 참여 없이는 임무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전쟁에 반대하고 위험한 작전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 이념적 동기를 지닌 개인들로 보인다”고 전했다. 텔레그래프는 “최근 암살은 크렘린의 편집증을 촉발시킬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위태로운 시기에 푸틴을 문앞에서 모욕했다”고 평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1991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할 무렵 창설됐다. 방첩 활동과 테러리즘 퇴치가 임무인 대통령직속 기관으로, 자체 특수부대인 알파 그룹도 운영하고 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18일 이번 암살 관련 용의자를 구금했다고 밝혔다. FSB는 “용의자는 SBU에 채용된 우즈베키스탄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