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1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김용현 전 국방장관(왼쪽)과 사열하고 있다. 뉴스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2021년 1월 출범 이래 최초로 대통령을 수사한다.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 18일 검찰로부터 윤석열 대통령 및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 사건을 이첩받았다. 경찰도 전날 윤 대통령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했다.
계엄 사태 이후 검찰·경찰·공수처는 지난한 수사권 다툼을 벌여왔다. 이번 주초까지만 해도 군부대 압수수색 영장과 현역 군인 체포권 등을 둘러싼 검·경 갈등이 도드라졌으나, 검찰과 공수처가 각각 소환을 통보했던 윤 대통령의 내란수괴 혐의 사건을 공수처가 맡기로 정리되면서 싸움은 일단락됐다.
'계엄 사전모의' 의혹을 받는 문상호 국군정보사령관이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질의에 답하고 있다. 공수처는 18일 문 사령관을 체포했다. 연합뉴스
공수처 비상계엄 수사TF(팀장 이대환 수사3부장)는 이날 계엄을 사전에 모의했다는 의혹을 받는 문상호 정보사령관도 체포했다. 이번 사건 첫 강제수사다. 공수처 검사는 검찰청법상 검사 및 군사법원법상 군검사 직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어 현역 군인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앞서 검찰은 경찰의 문 사령관 긴급체포를 불승인했다. “현역 군인 체포는 군경찰·군검사 등을 통해 이뤄져야 적법하다”는 이유였다.
문 사령관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2분 만에 경기 과천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로 병력을 보냈다는 의혹, 정보사 산하 북파공작부대(HID)를 국회의원 긴급 체포조로 투입했다는 의혹 등을 받는다. 또 계엄 선포 이틀 전인 지난 1일 정보사 소속 김모·정모 대령과 함께 경기 안산의 롯데리아 매장에서 ‘계엄 기획자’ 의혹을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만나 계엄을 논의했다는 이른바 ‘햄버거 회동’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지난 11일 공수처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사진은 지난 3월 국가테러대책위원회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공수처는 지난 11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홍 전 차장은 계엄 선포 직후 윤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인 체포’를 지시받았다고 밝힌 인물이다. 공수처는 군인권센터가 지난 9일 계엄 관여 의혹으로 고발한 군 관계자 27명 역시 순차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수사는 꾸준히 진행중”이라며 “11일 이후 매일 출석자가 있다”고 밝혔다.
공수처장 “내란수괴 구속수사”…내부는 “인력난”
윤 대통령 수사를 넘겨받은 공수처 내부는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공수처는 지난 9일 윤 대통령 출국금지를 승인받았다. 같은날 오 처장은 국회에서 “내란 수괴는 구속 수사가 원칙”이라고 피력했다. 지도부의 의지는 강력한 셈이다.
반면 내부에선 당장의 인력난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공수처 검사는 검찰 출신인 이재승 차장을 포함해 정원(25명)의 60%인 15명이다. 석 달 전 대통령실에 보낸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2명 신규 임명 제청안도 재가가 나지 않은 상태다. 공수처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며 “검·경 인력을 파견받는 안이 추후 협의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오동운 공수처장이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 수사 의지를 묻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공수처는 윤 대통령 수사에 소속 검사와 수사관을 전부 투입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경우 ‘순직해병 사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 등 다른 주요 수사들은 전면 중단이 불가피하다. 공수처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신속한 실체 규명이 필요하고, 출범 취지에 부합하기 때문에 직접 수사하게 된 다른 사건들은 다 내팽개치겠단 건가”라며 “공수처는 기본적으로 인력·예산·시설·장비 등 여러 여건이 부족한데 검찰에 이첩요구권까지 발동해 사건을 가져온 건 정치적 결정이라는 의심을 받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한상훈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중복수사 난맥상 해소는 잘된 일”이라며 “대통령과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장관, 민정수석 등이 다 검찰 출신이기 때문에 공정성 의문을 해소하려면 공수처가 맡는 게 낫다”고 평가했다.
“중복수사 해소” “특검 대비 포석” 의견 교차
법적 한계는 넘어야 할 산이다. 윤 대통령의 주요 혐의 중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범죄’는 직권남용만 있고, 내란죄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수사권이 대폭 축소된 검찰 역시 마찬가지다. 두 기관은 내란죄가 직권남용죄의 ‘관련 사건’이므로 수사가 가능하다고 동일하게 해석해왔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검찰은 김용현 전 국방장관 구속영장을 받아내며 법원으로부터 이번 사건 내란죄 수사권을 인정받았다는 차이가 있다”며 “공수처는 그런 전력이 없어 정당성이 떨어진다. 지금으로선 특검을 빨리 출범시키는 게 최선”이라고 짚었다.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정부 내란행위 진상규명 특검법'이 재석 283인, 찬성 195인, 반대 86인, 기권 2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공수처에 대통령·장관 등에 대한 기소권이 없다는 것도 과제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재판에 넘기려면 어차피 검찰에 기소요구를 하고 자료를 넘겨야 한다”며 “이첩 요구는 무익한 고집”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특검이 출범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공수처가 검찰을 거치지 않고 특검에 수사 기록을 제출하면, 특검이 윤 대통령을 기소할 수 있어서다. 공수처 사정에 밝은 법조인은 “특검에 넘기기 위해 기소권 없는 사건을 부적절하게 이첩받은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김정민·양수민·석경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