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사면법 개정안이 법리적으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기로 했다. 국무위원들도 거부권 행사에 동의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에 의한 첫 법률안 재의요구(거부권)가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2004년 3월 23일, 취재진 앞에 선 인물은 다름아닌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이었다. 당시 한 실장은 고 대행이 ▶특별사면 때 국회에 의견을 구하도록 한 사면법 개정안 ▶6·25 전쟁 때인 1951년 경남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의 피해자 등에게 국가가 보상하는 내용의 거창사건특별조치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때 곁에서 보좌하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로부터 20년 9개월이 흐른 지금,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번엔 본인이 직접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정치권에서도 “참 얄궂다”는 말이 나온다. 헌법과 법률이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가 대립하는 사안을 처리하는 역할을 한 대행이 다시 맡게 됐기 때문이다.
2004년에 비해 현재 정치권은 더욱 대립하고 있고, 정치적 후폭풍도 더 클 가능성이 크다. 한 대행은 19일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등 6개 쟁점 법안에 대해 심의할 예정이다.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커지자 더불어민주당은 18일 “권한을 남용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묵과하지 않겠다”(박찬대 원내대표)며 한 대행에 대한 탄핵소추 추진을 벼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 대행이 최대한 신중하다는 게 국무총리실의 설명이다.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한 대행은 국무위원뿐 아니라 현직 공무원 중에서도 과거 비상계엄을 직접 겪은 유일한 공직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1949년 6월생으로 만 75세인 한 대행은 1970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79년 10·26 다음날 비상계엄이 발령됐을 당시 경제기획원 사무관이었고, 1981년 1월 해제될 때는 경제기획원 과장이었다.
여권 관계자는 “한 대행은 육영수 여사가 총에 맞았을 때(1974년 8월)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10·26 때도 공무원이었다”며 “최고 권력자가 자리를 비웠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아주 오래 전부터 체득했을 것”이라고 했다.
한 대행은 비공개 행보로 국정 현안을 챙기고 있다. 지난 9일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를 만나 최근 정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당초 총리실은 만남 사실을 공개하지 않으려 했으나 일본 언론이 먼저 보도하면서 면담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안보나 경제 측면에서 한·미 관계가 가장 중요하니 대행이 직접 움직였고, 미국 측을 고려해 먼저 알리려 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한 대행은 여당뿐 아니라 야당과도 물밑에서 상당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14일에도 한 대행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비공개로 통화를 했는데, 그 사실을 알린 사람은 이 대표였다. 이 대표가 먼저 공개하지 않았으면 이 역시 공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이런 경험과 경륜에도 불구하고 한 대행의 향후 행보에 제약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 대통령뿐 아니라 한 대행도 내란죄 혐의로 입건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국회를 통과한 내란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은 “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한 대행 또한 사실상 ‘내란 공범’으로 국민 심판과 함께 법 심판을 피할 수 없다”(김용민 원내수석부대표)며 압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