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 "韓대행 거부권이 탄핵 사유? 어느 헌법·법률 의한 판단이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19일 “오로지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결심했다”며 양곡관리법 등 6개 쟁점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의결로 권한대행을 맡은 지 닷새 만에 야당과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명백한 입법권 침해”(조승래 수석대변인)이라며 반발했다. 

한 대행이 이날 임시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을 의결 및 재가한 6개 법안은 농업 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과 국회법 개정안,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이다. 모두 정부와 여당이 반대했지만, 지난달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법안이다. 한 대행은 “국가적으로 매우 엄중한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이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인지 고민과 숙고를 거듭했다”며 반대 이유를 밝혔다.  

한 대행은 남는 쌀을 의무 매입하는 양곡관리법과 농산물이 시장 가격 이하로 하락하면 정부가 차액을 지급하는 농수산물 가격 안정법에 대해선 “막대한 재정부담을 가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어업 분야 재해 발생 시 재해 이전 생산 비용까지 보장하는 농어업재해대책법 및 재해보험법은 “재해 지원의 기본 원칙에 반한다”며 반대했다. 한 대행은 국회 예산안 심사가 법정시한을 넘길 경우 정부 예산안의 본회의 자동 부의를 폐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예산 심사가 느려져 피해가 국민께 돌아갈 것”이라고 했고, 국회에 출석한 증인과 참고인이 개인 정보와 영업비밀을 이유로 자료 제출 거부를 못 하게 하는 국회증언법 개정안에 대해선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고 기업의 핵심기술 유출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조목조목 문제점을 따졌지만, 이날 한 대행의 발언은 국무총리로서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했을 때와는 다소 달랐다. 과거 양곡관리법에 대해 “쌀 강제 매수법”이라 비판하고, 야당을 향해 “국정에 부담을 주는 의도라면 유감”이라 각을 세웠다면, 이날은 “국회의 입법권은 최대한 존중해야 하지만, 불가피하게 재의요구를 한다”며 낮은 자세를 취했다. 여권 관계자는 “한 대행의 색깔이 드러난 부분”이라고 전했다. 한 대행은 국무회의 비공개 석상에서 "장관이 소관 부처에 전권을 가졌다는 생각으로 책임감을 갖고 임해달라"고도 당부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통신사진기자단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통신사진기자단

 
다만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야당이 제한적이라 주장하는 권한대행의 법적 업무 범위와 관련해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라는 것은 없다”며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가 탄핵 사유가 된다는 것은 어느 헌법과 법률에 의한 판단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자제하는 것일뿐 법적으로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가 제한을 받지는 않는다는 취지다. 또한 전날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이 한 대행을 “청소 대행은 청소가 본분”이라 비판한 것에 대해 “법률을 굉장히 잘 아시는 법률가이시고, 권익위원장까지 하신 분이 왜 그런 해석을 하셨는지 굉장히 궁금하다”며 불쾌감도 숨기지 않았다.

문제는 이날 거부권이 충돌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한 대행은 23~24일 야당이 일방 추진 중인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끝나면 임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내년 1월 1일이 거부권 법정 시한인 내란·김건희 특검법, 이른바 쌍특검법에 대한 답도 내놓아야 한다. 여당은 한 대행에게 헌법재판관 임명권은 없다는 입장이며, 쌍특검법은 부결 당론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헌법재판관 임명은 서둘러야 하고, 특검법 거부권은 탄핵 사유라며 압박 중이다. 두 사안에 대한 한 대행의 고심도 이번 정책 법안에 대한 거부권 때보다 훨씬 더 깊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19일 기자들에게 “헌법재판관 임명은 여러 법률적 의견이 있고, 정치적 이유와 논리도 있어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쌍특검법 역시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는지 검토할 계획”이라고 확답을 피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특히 헌법재판관의 경우 정치적 상황에 따라 여야의 입장이 시시각각으로 바뀌고 있다”며 “무엇이 공정한지를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내란 특검법은 한 대행이 수사 대상이란 점에서, 김건희 특검법은 여론의 압도적 지지가 있고, 여당의 재의결 이탈표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 대행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한 대행은 이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통화하고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한 대행은 통화에서 “앞으로의 모든 국정이 철저하게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며 “우리 정부는 외교·안보 정책을 차질 없이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은 한·일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발전될 수 있도록 계속 협력하고, 양국이 직면한 북핵 위협과 러·북 협력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일, 한·미·일 간 긴밀한 공조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데에 뜻을 함께했다고 총리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