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전남과 경남에서 트랙터 30여 대와 화물차 50여 대를 끌고 출발한 전농은 21일 오전 9시쯤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집결했다. 이후 용산구 대통령 관저까지 상경할 예정이었지만, 낮 12시쯤 경기 과천을 지나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인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 차벽에 막혔다. 경찰은 “공공 이익을 훼손할 정도로 극심한 교통 불편을 야기할 수 있다”며 양방향 도로에 경찰차로 차벽을 세웠다. 전농은 21일 참석자 2명이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고 했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털모자·장갑·목도리 등 방한용품을 챙겨 현장으로 모였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모여 앉은 이들은 “경찰은 차 빼라”, “경찰 나갈 때도 됐잖아”, “윤석열 퇴진” 등 구호를 외쳤다. 전날 서울 광화문에서 윤 대통령 퇴진 집회를 마치고 곧바로 남태령으로 달려와 함께 밤을 새운 시민들도 있었다. 조명민(24)씨는 “어제 3시부터 서울에서 집회하고 끝나자마자 이곳으로 와 밤새 있었다”며 “시간과 체력이 있으니 나라를 위해 나서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집회 현장과 가까운 남태령역 2번 출구 앞에선 물품 나눔도 이어졌다. 핫팩·양말 등 보온용품부터 휴대폰 보조배터리, 응원용 봉 건전지, 비상약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직접 시위 현장에 오지 못한 이들은 따뜻한 음료, 토스트 등을 배달하기도 했다. 지하철역 앞에선 시민 6명이 “핫팩 가져가세요”, “간식 챙겨가세요”, “목도리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7세 딸 아이와 왔다는 곽모(37)씨는 “가방에 김밥 30줄과 귤 등을 챙겼다”며 “어제도 왔었는데 근처에 편의점도 하나 없었다. 아이가 있어서 밤을 못 새고 가 미안한 마음에 김밥을 사 왔다”고 말했다. 장진범(46)씨는 “유튜브를 보고 여러 물품이 부족하대서 핫팩을 기증하려고 왔다”며 “시위에 참여 못 하는 이들은 배달 애플리케이션 등을 이용해 현장으로 바로 배송해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틀째 이어진 경찰과 전농 측 대치로 일부 도로 통행이 어려워지면서 시민들은 이동에 불편을 겪기도 했다. 사당역 4번 출구엔 ‘어제부터 사당IC-남태령 구간을 경찰 버스 20~30대가 막고 있다. 버스 진입이 언제 될지 모르니 다른 교통편 이용을 권장 드린다’는 손글씨도 붙어 있었다. 이정만(66) 씨는 “사당에서 경기도 의왕까지 자가용으로 30분 거리를 출퇴근하는데 어제 퇴근 땐 평소보다 1시간 정도 더 걸렸다”며 “계속 고개가 막히면 자가용을 못 탈 것 같아 오늘은 지하철 타고 외출한다”고 말했다.
현장 분위기가 바뀐 건 이 날 오후 3시 45분쯤이다. 주최 측은 시민들에게 “트랙터 10대가 한남동(관저) 방향으로 행진하기로 했다”며 참가자들에겐 지하철을 타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 근처에서 오후 6시까지 모여달라고 호소했다. 경기 과천·의왕을 지역구로 둔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경찰청을 방문해 중재·협상을 했다”며 “경찰이 차벽을 열고 일부 트랙터가 용산으로 향할 수 있도록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