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 절반 탈락 논란…"성적 기준미달" "사직 전공의 자리"

의사와 정부 간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24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의사와 정부 간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24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공백이 10개월 넘게 지속 중인 가운데, 내년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모집에서 지원자 절반이 탈락한 배경을 두고 의료계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성적대로 뽑은 결과"라는 시각과 "사직한 전공의들 자리를 남겨두기 위해 신규 지원자들을 일부러 떨어뜨렸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번 모집에서 나타난 저조한 합격률은 내년 초 이뤄질 인턴 및 레지던트 2~4년차 선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수련병원은 내년도 상반기 인턴 모집을 위해 다음달 22~23일 원서접수를 받은 후 24~27일 면접(실기) 시험을 실시한다. 레지던트 상급년차(2~4년차) 모집 일정도 다음달 중 수련환경평가본부를 통해 공지될 예정이다.  

하지만 앞서 실시된 레지던트 1년차 모집 결과를 보면 향후 모집에서도 높은 지원율·충원율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20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5년도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모집 결과’에 따르면, 181개 수련병원에서 총 3594명을 모집했으나 지원자는 314명에 불과했고 이중 181명만 최종 선발됐다. 지원자의 57.6%만 합격한 것으로, 통상 모집인원을 최대한 채워 선발하던 예년과는 달리 탈락자가 다수 나왔다.

특히 ‘인기과’로 꼽히는 전공과목들에서 합격률이 낮았다. 영상의학과에 지원한 15명 중 2명만 선발돼 13.3%로 가장 낮았고, 피부과 33.3%(9명 중 3명), 마취통증의학과 38.5%(13명 중 5명), 재활의학과 43.5%(23명 중 10명) 등이었다. 반면 ‘필수과’로 불리는 과목들은 비교적 높은 합격률을 보였다. 특히 각각 1명, 2명, 5명이 지원한 산부인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는 지원자 모두가 선발됐다.

23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23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이처럼 일부 과목의 합격률이 이례적으로 낮게 나타나자 의료계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인기과에 합격할만한 역량이 안 되는 전공의들이 지원자가 적은 기회를 노려 ‘빈집털이’ 식으로 지원한 것이므로 절반 가까운 탈락자 발생은 당연하다고 풀이했다. 한 ‘빅5’ 병원 소속 교수는 “이번 지원자들 대부분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경쟁률 높은 인기과에 지원할 능력이 안 되는 이들”이라며 “평상시와 똑같은 선발 기준으로 뽑은 결과인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나.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지원했는데 무조건 뽑아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반면 ‘기준 미달’이라는 건 핑계일 뿐, 지원자들을 실제 떨어뜨린 이유는 사직한 전공의들이 돌아올 자리를 남겨두기 위해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공의 정원(TO)은 병원별로 정해져 있어 신규 레지던트를 채용하면 올해 사직한 이들의 자리가 채워지기 때문에 향후 복귀가 어려워질 수 있다.

한 사직 전공의는 “기존 전공의들을 버리고 새로운 전공의를 받아줘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인기과일수록 강했다고 들었다”며 “필수과는 올해 나간 전공의들이 진짜로 복귀하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있는 데다, 당직을 서줄 인력이 필요하니 뽑을 이유가 있었겠지만, 인기과는 그렇지도 않으니 굳이 선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수련병원 관계자도 “이제 인턴 1년 과정을 마친 전공의들 사이에 ‘실력 차이가 커서 못 뽑겠다’는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기존 전공의들 자리를 지켜주려고 지원자들을 탈락시킨 게 공공연한 현실”이라며 “이번 결과를 보고 향후 모집에 지원하는 이들도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9일 “일부 수련병원에서 지원자에게 지원 철회를 안내했다는 민원이 제기되는 등 지원 의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조규홍 장관)고 밝히며, 부당한 사유로 불합격하는 사례가 없도록 모집과정을 관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도 ‘부당한 불합격’ 사례를 일일이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의료계 관계자는 “지원 의사를 위축시키는 말이나 행동을 대놓고 하는 경우는 없으니 이를 잡아내는 게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